[이두수의 절차탁마] 노마드 시대 …다시 회복해야 할 노동의 품격

[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이제 광주 일곡현장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와 이달 말쯤이면 할석팀도 빠질 거 같다. 건물 주변 되메우기 공사가 시작되면 골조공사는 거의 끝났다는 얘기다. 할석미장팀만 남아 마지막까지 내장시공에 아무 문제없도록 틈을 메우고 있다. 마무리 단계에선 역시 선이 중요하다. 인체에서 골격이 좋다는 것은 선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건물도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지만 무엇보다 선이 예뻐야 한다.

마무리 공정에 들어가면 근로자들은 다음은 또 어느 현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건설노동자는 모두 일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여기서 일이 끝나면 또 어디 가서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인 것이다. 직업은 있으나 직장이 고정된 것이 아니니 늘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좋게 생각하면 일용직 건설노동자는 현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노마드적 삶을 사는 직종이기도 하다.

직업과 노동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보통 '저는 ○○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빈칸에는 흔히 자신의 직업이 들어간다. 교사, 회사원, 건설노동자, 예술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직업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사회적 위치를 표현한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직업이 곧 정체성의 뼈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질문은 더 깊은 울림을 가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단지 나의 직업을 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직업을 넘어선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그리고 이 일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인간이 노동을 통해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보자면 꽤 최근의 일이다. 고대 사회에서 노동은 하층민과 노예의 몫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동은 자유인의 덕목이 아니며, 정신적 성찰은 노동에서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시민은 정무나 철학, 예술 활동에 참여해야 했고, 육체노동은 종속의 상징이었다.

중세에는 신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노동’은 육체의 타락과 원죄에 대한 속죄로 이해되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고통받고, 그것을 통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지만 때로는 처벌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직업은 여전히 신분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고, 사회적 이동은 제한되었다.

이러한 노동 개념에 근본적 전환을 가져온 것은 종교개혁이다. 루터는 모든 직업이 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칼뱅은 성실한 노동, 근면, 검약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다. 직업이 ‘소명(voca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노동을 통한 자기 수양과 성공을 미덕으로 여기는 프로테스탄트의 노동윤리가 되었다. 이렇게 근대에 들어오면서 자본주의 등장과 시민계급의 부상은 노동의 성격을 바꾸었다. 직업은 신분을 넘어선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자 내면의 윤리를 담는 그릇이 된 것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출발점에서 직업윤리는 곧 인간의 윤리였고, 노동은 곧 자아 실현의 터전이었다. 이 시기부터 노동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개인의 자립, 덕성, 그리고 사회 기여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노동은 대규모 조직 속의 단위 행위가 되었다.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되었고, 이로 인해 노동자의 인간성 상실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시기의 노동을 마르크스는 소외된 노동이라고 비판했으며, 사회 발전은 물질적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되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사회 발전을 야기한다는 그의 유물변증법 이론은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 노동은 또 다른 의미도 갖는다. 바로 노동자가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 파업, 사회주의 운동, 복지국가의 형성 등 노동이 사회적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우리는 다시 노동의 의미를 묻고 있다. 자동화, AI, 일용직, 파견직,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화 등은 기존의 고정된 직업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일은 있는데 직업은 없고, 일터는 있지만 고용은 불안정하고, 일은 자유로운데 보상은 불공정하다. 이러한 형태의 노동은 갈수록 보편화되고 있지만 정체성을 지탱해줄 기반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처럼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인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초기에는 생존을 위한 행위였던 노동이 점차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 더 나아가 정치·문화적 의미까지 내포하게 되었다. 노동은 여전히 존재의 문제이며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왜 일하는가?' '노동은 나에게 무엇인가?'

 노동자의 아비투스와 공동체

이런 상황 속에서 직업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강요처럼 들린다. 오늘 하루 일한 사람이 내일은 일을 못 할 수도 있는 시대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나 사명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동이 일시적이고 대체 가능할수록 나 역시 일시적이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공허해진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은 많은 통찰을 준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 행동, 감각은 사회적 구조가 몸에 새긴 무의식적 성향이다. 다시 말해 노동에 대한 태도는 개인의 성격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사회 환경과 조건이 형성한 결과다.

예컨대 장기간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종사한 사람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기 쉽다. 정리정돈에 대한 개념이 체화되지 않거나 거친 말과 격식 없는 행동, 기술 숙련보다 속도를 우선시하는 문화에 노출된 사람은 그 스스로도 자신의 일을 ‘어쩔 수 없는 생계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단지 게으름이나 책임감 부족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형성한 노동자의 아비투스다.

이러한 조건에서 직업의식이 부재한 공동체가 어떻게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사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공동체에 대해 책임을 갖기 어렵다. 공동체는 ‘권리’만이 아니라 ‘기여’와 ‘참여’의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늘 임시직으로 전전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존엄하게 여기기란 쉽지 않다. 그에게는 ‘내 일’이라는 감각 자체가 체화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일을 방어적으로 수행하며, 동료와의 관계도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보다는 생존이 우선이 된다. 이처럼 직업의식의 부재는 공동체 의식, 시민의식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업의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직업은 단지 생계수단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되는 방식이자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시민의식이란 투표권만 갖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지는 태도이다. 그런데 자신을 대체 가능한 존재, 수시로 밀려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공동체를 책임지려 할 수 있을까?

결국 시민의식은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긍정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직업의식이란 그런 점에서 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며, 자기를 긍정할 수 있는 조건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직업의식 자체를 교육이나 훈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아비투스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 즉 ‘장(field)’이다. 선임 숙련공과의 도제관계, 동료와의 신뢰 기반과 협업, 현장에서의 예술과 인문학적 실천, 작업일지와 글쓰기 등은 모두 그 장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이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끌어낼 수 있는 구조와 공간 말이다.

현실과 거리감이 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노동이 예술행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릴로 벽을 깨고, 모르타르로 벽을 바르고, 타일을 붙이고, 벽지를 바르는 작업을 더 안전하고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그는 이미 예술가가 아닌가. 역사적으로도 노동이 생존을 위한 노예들의 작업에서 개인의 덕성과 시민의식을 키우는 행위로 발전해 왔듯이, 노동을 통한 몸과 정신의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가.

노동자가 노동을 예술로 꿈꾸고, 철학을 상상하는 그런 노동현장이 될 때 노동은 소외를 넘어 예술이 되고 최고의 복지가 되지 않을까. 그럴 때 비로소 직업은 다시 존재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

며칠 전 건축가 윤경식 선생이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돈 조반니’ 총예술감독으로 성공적인 공연을 치렀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번 공연은 건축가가 총예술감독을 맡아 고전 오페라의 형식을 넘어 ‘공간과 예술, 인간의 존재성’을 아우르는 종합예술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설노동자다'라는 말이 단지 신분이 아니라 철학이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직업 없는 노마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노동의 품격일지 모른다.

 
하고싶은 것이 많은 노동자 사진저자 제공

나는 노동을 좋아한다 고래로 육체노동은 비천한 계급이나 하는 것이거나 처벌 또는 속죄의 대용이었다 변하지 않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 정신세계를 추구했던 종교가 요즘은 형편무인지경이 되어 가고 있다 육체노동을 무시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노동도 그동안 잘못 해석되고 설명되어진 노동의 비루함 천함의 이미지를 벗어버려야 한다
당당한 전문가로서 대우할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일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튼튼한 육체를 자랑하고 건강한 노동의 가치를 널리 보급해야 한다 나에겐 그런 꿈이 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노동자 [사진=저자 제공]

나는 노동을 좋아한다. 고래로 육체노동은 비천한 계급이나 하는 것이거나 처벌 또는 속죄의 대용이었다. 변하지 않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 정신세계를 추구했던 종교가 요즘은 형편무인지경이 되어 가고 있다. 육체노동을 무시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노동도 그동안 잘못 해석되고 설명되어진 노동의 비루함, 천함의 이미지를 벗어버려야 한다. 당당한 전문가로서 대우할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일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튼튼한 육체를 자랑하고 건강한 노동의 가치를 널리 보급해야 한다. 나에겐 그런 꿈이 있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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