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경기 침체와 트럼프발(發) 관세, 중국의 추격 등 경영환경의 악화로 재계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가전, 철강 등 국내 주력 산업들의 부진한 성적표가 이어지면서 삼성·SK·LG 등 주요 그룹 총수와 경영진은 사실상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위기 돌파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3.77% 감소한 11조2900억원에 그쳤다. 상반기 기준으로 2011년(6조7000억원) 이후 최악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이 약화한 가운데 미국의 대중 제재에 따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라인 가동률 하락 등 반도체 사업 부진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하반기 경영환경도 녹록지 않다. 아직도 HBM3E(5세대)의 엔비디아 공급 소식이 묘연한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반도체로 확산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삼성을 둘러싼 '위기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9~13일(현지시간) 미국 아이다호주 선 밸리 리조트에서 열린 '선 밸리 콘퍼런스'를 찾았다. 전 산업이 인공지능(AI)으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구글, 오픈AI 등 빅테크 거물들과 협력 기회를 모색하며 글로벌 경영 행보 구상을 다듬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며 '어닝쇼크'를 기록한 LG전자도 차세대 엔진 확보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권봉석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사장단은 지난주 혼다 본사에서 비공개 '테크데이'를 열었다.
LG그룹은 내연기관차를 넘어 전기차,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을 비롯한 미래차 분야로 영역을 확장함과 동시에 벤츠, 현대차,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을 만나며 '전장 세일즈'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간 LG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던 가전, 디스플레이, 카메라모듈 등 전자 계열사들이 중국의 추격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는 만큼 글로벌 완성차업체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미래 먹거리로 꼽고 있는 전장(차량용 전기·전자장비) 사업 확대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현재의 격화되고 있는 경쟁 상황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5년 뒤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전략 마련에 힘써 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재용 회장 등과 이달 말 열리는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사교 모임인 '구글 캠프'에 초청받아 참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참석자와 행사 내용 등은 공개되지 않지만, 재계에서는 글로벌 기업 총수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따른 공급망 문제 등이 거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관세전쟁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판매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을 수시로 오가면서 사업 전략을 다각화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오는 16~17일 경기도 오산 롯데인재개발원에서 '2025 하반기 롯데 VCM(옛 사장단회의)'를 열고 하반기 경영 구상에 돌입한다. 그간 사장단 회의는 오후 일정으로 진행됐었는데, 대외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1박2일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세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석유화학 업황의 침체가 장기화되자 지난달 한화토탈에너지스 대산공장을 찾아 직접 내부 결속 다지기에 나섰다. 김승연 회장은 사업장을 둘러본 후 "지금은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와 급격한 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로 소재·에너지 산업이 과거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원가 절감과 공정 효율 극대화, 기술과 품질 경쟁력 확보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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