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이곳에 정착한 부동산 중개업자 이성종(59)씨는 "요즘 들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2층은 95% 이상 공실이고 1층도 절반 이상 비었다. 여기 만성동은 먹거리가 하나도 없다"며 "젊은 사람들이 친구 불러서 맥주 한잔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그렇다. 전부 도청 근처로 빠지니까 이쪽은 점점 더 비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15일 전주시 덕진구 만성지구의 한 건물 내부. 이 건물은 1층이 전부 공실이다. [사진=장선아 기자]
텅 빈 거리와 썰렁한 만성지구 상권은 '혁신'이란 단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주말이면 공공기관 종사자 일부는 서울이나 광역시로 향한다. 직장은 전주지만 정작 머무는 도시는 아니다.
혁신도시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전북테크비즈센터는 전북혁신도시 내 산학연 협력과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조성된 특화 공간이다. 이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 모씨(63)는 "주변 건물 대부분이 업무용이라 점심 시간에만 잠깐 붐비고 저녁엔 주문이 거의 없다"며 "주말이면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혁신도시 내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는 김상진(52)씨도 "이곳은 청년층 비중이 높지만 대부분 직장 때문에 잠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실이 차지 않으니 인테리어 수요도 점점 줄고 있다"고 했다.
15일 전주시 덕진구 만성지구 일대. 점심시간임에도 상가는 한산하고, 거리엔 직장인 몇 명만 오간다. [사진=장선아 기자]
만성지구와 혁신도시를 둘러싼 인구 유입 부진은 단지 이들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북 전체로 퍼지고 있는 인구 소멸의 징후이자,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균열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전북은 현재 14개 시군 가운데 13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전주는 유일하게 소멸주의단계지만 지난해 소멸위험지수 하락폭은 도내에서 가장 컸다. 혁신도시가 위치한 전주조차 인구 유지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신도심 한복판에 사람 없는 골목이 늘어가는 현상은 전북이 직면한 인구구조 위기와 맞닿아 있다.
15일 전주시 완산구 평화2동 평화주공아파트. 고령 주민들이 정자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장선아 기자]
청년층 정착 부진은 지역 경제의 활력을 갉아먹고, 이는 고령화 문제로 이어진다. 전주시 완산구 평화2동, 전주양지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이 모군(8)은 "우리 학년은 한 반밖에 없다. 함께 놀 친구가 별로 없어 하교 후엔 누나랑 같이 귀가한다"고 말했다. 해당 지역은 전주 내에서 고령 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전체 인구의 19%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곳 평화주공아파트에 거주하는 황 모씨(82)는 "동네에서 젊은 사람들 보기가 힘들어 청년 인구가 줄고 있는 것도 체감하지 못했다"며 "이 앞 노인복지관에서 점심 먹고 장기 두고 쉬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간다"고 말했다.
균형발전의 상징으로 출발한 혁신도시는 정작 삶의 균형을 담아내지 못한 채 비어가고 있다. 개발은 이뤄졌지만 사람은 머물지 않는다. 청년이 떠난 자리는 고령화가 메우고, 빈 거리는 소멸에 다가간다. 인구 유입이 아닌 인구 유출 현실에서 '혁신'이 다시 빛을 발하려면 사람 중심의 도시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