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 [사진=EPA·연합뉴스]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3개국(E3)과 이란이 이번 주 핵 협상을 재개할 예정인 가운데 양측 신경전이 격화되고 있다.
E3가 핵 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유엔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 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하자 이란은 E3가 그런 조처를 할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20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유엔 안보리 회원국에 E3가 스냅백 조치를 발동할 법적, 정치적, 도덕적 자격이 없다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스냅백은 2015년 이란이 서방과 체결한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이란이 약속한 핵 프로그램을 동결·제한하지 않으면 유엔 제재를 복원하기로 한 단서 조항이다.
아락치 장관의 이런 언급은 앞서 이란과 E3가 한 달 만에 핵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직후 나왔다. E3가 핵 협상을 앞두고 스냅백 수순을 압박하자 이란이 즉각 반발한 것이다.
아락치 장관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JCPOA를 탈퇴했을 때도 이란은 다른 참여국들에 의무를 준수하도록 설득했지만, E3는 약속을 저버리고 심지어 미국의 ‘최대 압박’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까지 했다”며 “이런 전력을 가진 자들이 선의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E3는 자신들도 지키지 않았던 결의를 남용해 유엔 안보리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없다”며 안보리 분열을 심화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란은 언제나 의미 있는 외교에는 화답할 준비가 돼 있지만 망상적인 더러운 일은 물리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랍권 알자지라 방송 등에 따르면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오는 2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E3과 핵 협상을 갖는다고 밝혔다. 협상은 외무부 차관급 차원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지난 4월부터 양국 간 핵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 중단을 놓고 마찰이 고조됐다. 이후 지난달 미국이 이란 핵 시설을 직접 타격했다.
이란은 지난달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로 이스라엘과 휴전한 뒤로 우라늄 농축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한 협력을 잠정 중단했다. 다만 이란은 핵협상 재개에는 여지를 둬 왔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크렘린궁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고문을 만났다.
타스, AFP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이 오늘 크렘린궁에서 이란 최고지도자의 고문인 알리 라리자니를 접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라리자니 고문은 이란 지도부를 대신해 중동 지역의 현재 긴장 고조 상황과 이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상황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라리자니 고문을 만나 중동 상황의 안정화와 이란 핵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촉구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는 역내 상황 안정화와 이란 핵 프로그램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목표로 하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이란은 전통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국 관계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했을 당시 러시아는 이전처럼 이란을 강력하게 옹호하지 않았다고 AFP는 보도했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이 이란에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과 핵 합의를 하는 방안을 요구했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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