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미국과 일본 정부는 일본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번 미·일 협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품목 관세 인하다.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25% 관세를 절반 수준인 12.5%로 내렸다. 대미 수출 일본산 자동차 기본관세인 2.5%를 더하면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최종 관세율은 15%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철강과 자동차 등 품목 관세는 낮출 수 없다"는 뜻을 고수해왔던 걸 고려하면 품목별 관세는 협상을 통한 인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돼왔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통상 관료인 스티븐 본 전 USTR 대표 대행도 워싱턴특파원과 대담하면서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자동차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는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관세 인하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본은 최대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자동차·트럭·농산물 시장 개방 카드를 내놓으며 자동차 관세를 12.5%로 지켜내는 극적 타결을 이뤄냈다. 주요 투자 분야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반도체, 의약품, 철강, 조선, 인공지능(AI) 등이다. 일본의 대미 투자금 중 상당 규모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투입될 전망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팀장은 "자동차 관세율이 한국도 일본과 동일하게 12.5%로 결정될지가 관건"이라며 "한국도 비슷하게 협상을 진행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입관세가 없어서 오히려 일본보다 유리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 고위급 인사들은 미국으로 총출동해 막바지 한·미 협상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오는 25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만나는 '한·미 2+2 통상 협의'가 예정돼 있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4000억 달러 규모의 '제조업 협력 강화 펀드' 조성을 요청했는데, 이는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3개월 치에 해당하는 규모다.
우리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산업 분야 협력 강화를 내세운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중심으로 협상에 나선다. 관세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투자를 내세워 양국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알래스카 LNG 투자를 관세 인하를 관철하기 위한 카드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일부 농산물 분야에 대한 비관세 장벽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제기되지만 우리 협상단은 국가 식량안보와 직결된 농산물 대신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등 '연료용 작물 수입 확대' 카드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이 우리 측 협상안을 수용하지 않고 과도한 투자를 계속 요구할 경우 협상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한국은 새 정부 들어 최근 협상팀을 새로 꾸린 만큼 협상 타결에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JP 모건은 "트럼프 정부가 관세 협상 시한을 재차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상호관세를 기본 관세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품목별 관세도 인하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면서 "남은 협상 기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실리 위주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 정부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미국과의 협의에 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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