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출구 전략 못 찾는 미궁 속의 한국 경제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탄핵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정권 교체가 되었고, 아직도 정부가 제대로 자리를 못 잡는 상태다.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 상황은 이러한 현상과 아랑곳없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순진한 국민은 그래도 이 정권이 잘해 줄 것이라고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당면하고 있는 위협이 만만하지 않고 당장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면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저력이 있고, 경제도 제조업이 버티고 있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낙관적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진솔하게 냉정한 잣대로 위기의 본질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풀 수 있는 해법이 그리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항간에는 한국 경제가 10년을 잃어버렸다거나, 앞으로도 잃을 시간이 더 많을 것이라는 꼬리표까지 따라다닌다. 과거에 닥친 위기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아무리 유능한 정부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무겁다.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세 개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둘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들이고, 하나는 내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외부적 요인은 미국발(發) 통상 전쟁과 중국발(發) 제조 경쟁이 그것들이다. 내부 문제는 생산성 없는 소모전이 장기화하면서 생겨나고 있는 사회적 자본의 급격한 고갈이다. 외부의 위협에 맞서 내부가 합치기보다는 끊임없이 분열하면서 현재보다 더 못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이 시작하고 있는 통상 전쟁은 단순 상품과 기술만이 아닌 핵심 광물 등 자원까지 결합하여 경제와 안보가 하나의 프레임에서 움직인다. 과거에는 눈치를 보면서 줄타기도 가능하였지만 이러한 구도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미국이 이를 주도하고, 중국은 미국 편을 드는 국가에 불이익을 주려고 벼른다. 미국과 중국 시장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무려 40%에 근접하는 한국 수출에 엄청난 딜레마다. 수출시장 다변화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지가 오래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한국 상품의 위상이 폭삭 주저앉았는데도 어설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을 맴돈다. 이 두 개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지 않고서는 한국 무역의 앞날이 계속 고전할 것이라는 경고는 현재진행형이다.
 
보호무역보다 더 두려운 게 바로 중국 제조기술 부상이다. 이는 한국 제조업을 정면 조준한다. ‘빠른 추격자 전략’을 같이 채택했다고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육성은 궤도가 다르다. 완제품 생산에 치중하면서 중간재와 소재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커 아직도 매년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200억 달러를 오르내린다. 반면에 중국은 정부 주도로 역량을 총집결하여 소·부·장과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한 제조업 고도화를 완성해 가는 중이다. 이 결과로 중국 시장에 대한 한국의 중간재 수출까지 막히면서 2023년부터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고착화하고 있다. 또 다른 200억 달러 적자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나온다. 다른 나라와의 무역으로 번 돈을 중국과 일본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꼴이다.

첫 단추 잘못 끼우면 5년 내내 표류할 가능성 
 
이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한국 경제의 장래가 심각하지만, 우리 내부는 이에 대해 대비는커녕 속수무책으로 추락을 방관하고 있는 듯하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갈등이 심하고, 정치는 이를 역이용해 정치적 실리 챙기기에 바쁘다.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법인세 인상, 부자 증세 등 줄어든 세수 확보에 불을 댕긴다. 최근 국가 간의 국익 경쟁이 첨예해지면서 이의 선봉에 있는 기업 지원을 위해 감세를 서두르는 여러 국가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세출(歲出)을 줄이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과거 관행에 따라 낭비되는 국가 예산 지출이 엄청나다. 이미 시대적 소임을 다한 국가 기관이나 단체들이 버젓이 살아남아서 혈세를 축낸다. 더 거두기보다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기업·자금·인재는 있다고 하지만 이를 견인해낼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실행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신뢰, 규범, 연결망(network) 등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협력하여 공의 목표를 추구하는 무형의 자산이 없어졌다. 불신이 만연하고, 도덕적 기준이 상실되고, 연결보다는 끝없이 분열로 치닫는다. 기업과 인재, 그리고 부자는 안을 버리고 밖으로만 나돈다. 이를 끊어낼 수 있는 대전환의 물꼬가 시급히 필요하지만, 현재의 정치 지형이나 언론이나 여론 등 사회적 구조를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정권이 교체되면 지난 정부가 하던 일을 손바닥 뒤집듯 내팽개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여 또 다른 일을 도모하다 보니 일관성과 연속성은 사라지고 국가 경쟁력은 표류한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도 난항을 거듭한다. 미국은 마치 한국을 대놓고 손보기라도 하려는 듯 고자세다. 시간이 지나면 타협점이야 찾겠지만 경쟁국과의 유불리에다 농업을 비롯한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따라 정권 초기 단추 끼우기가 정해진다. 중국 제조업의 추격으로 인한 한국 제조업의 위기에 대해선 그리 급해 보이지 않는 듯하다. 큰 몸집의 중국과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법도 없어 보인다. 전체 제조업을 두고 중국과 일일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것은 무모하다. 중국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에 특화하여 격차를 유지하고,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일례로 원전과 같이 우리가 가진 우월적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건 실로 어리석은 짓이다. 고속철이나 태양광 등에 이어 원전도 실시간으로 한국을 옭아맨다.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도 결국 당사자 몫이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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