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외교의 영역에 들어선 AI...딜레마 속 세계 3강 도전기

김성현 아주경제 AI부 차장 사진아주경제DB
김성현 아주경제 AI부 차장 [사진=아주경제DB]


한국이 인공지능(AI) 세계 3강으로 도약하려는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 경쟁에 돌입하며 ‘협의체’를 통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제 인프라와 인재를 넘어 외교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와 방위비로 한국을 압박하더니 이제 AI 분야에서도 미국식 규범을 강요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달콤한 제안을 내놓는다. 지난 26일 리창 총리가 제안한 세계 AI 협력기구는 글로벌 규제 조율과 혁신 공유를 강조하며, AI 기술이 소수 국가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포괄적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청정 에너지 인프라와 데이터 센터 구축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AI 생태계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매력적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제안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기술 이전, 공동 연구 가능성은 한국의 AI, 반도체, 소프트웨어 산업에 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지난 2월 기준 중국 내 생성형 AI 사용자는 약 2억5000만명으로, 전 세계 사용자의 약 20%에 달한다. 1%에도 못 미치는 한국의 AI 시장 규모와 비교해 중국은 한국이 현실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AI 액션플랜을 발표하며 규제 완화와 실리콘밸리 중심의 혁신을 강조했다. 이는 AI 칩 수출 통제 강화로 이어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에 간접적 규제 리스크를 초래한다. 또 중국과의 협력은 안보 문제로 직결될 수 있어 한국의 선택지가 미국으로 한정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우방국과의 기술 협력을 약속하며 중국 견제를 노리고 있지만 국내 AI 업계는 미국과의 협력이 실질적 국익으로 이어질지 확신하지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은 협력국이 미국보다 큰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한국은 최대 무역국이자 군사 동맹인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한국은 주권 AI(소버린 AI) 전략을 통해 자율성을 확보하려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다행히 한국 기업의 성과는 희망적이다. LG의 엑사원,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솔트룩스의 루시아, 업스테이지의 솔라 등 국내 거대언어모델(LLM)은 글로벌 메이저 AI 기업들과 견줄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정부는 이러한 기업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강대국들과 외교적 줄타기를 통해 AI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앞으로 2년 6개월은 K-AI의 성공과 산업 전반에 AI를 도입하기 위한 골든타임이다. 강대국들은 당근과 채찍을 들고 한국과 같은 잠재력 있는 국가를 공략하며 무역, 지정학적 리스크, 정치 등 모든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 글로벌 AI 산업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17세기 청과 명의 전쟁 당시 광해군은 중립 외교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조선은 굴욕을 겪었다. 당시 조선은 힘이 약했지만 오늘날 한국은 세계와 경쟁할 역량을 갖췄다. 섣부른 판단으로 역사를 반복하기보다는 치밀한 외교 전략으로 한국이 AI 세계 3강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의 협력, 그리고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외교적 지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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