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현장 향한 장관의 첫걸음

지난달 24일 김영훈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조합원들의 요청에 대화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4일 김영훈(오른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후보자 시절 민주노총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조합원들의 요청에 대화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기 좀 봐 주십시오. 불법 사업장 조사 좀 해주십시오."

지난달 24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처음 출근하던 날이었다. 도어스테핑 현장에서 취재진 질문에 응답하는 김 장관의 목소리 뒤로, 불쑥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해당 건물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던 주얼리 세공 노동자였다.

장내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일부 카메라 기자들은 동선을 바꿨고 주변 참모들도 눈빛을 주고받았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모두가 움찔하던 순간, 김 장관은 "잘 챙겨보겠다. 인터뷰 끝나고 찾아뵙고 말씀드리겠다"고 짧게 응수했다.

약속은 지켜졌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곧장 농성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얼리 노동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근로기준법만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용보험 의무 가입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70~80%가 여전히 가입돼 있지 않다는 현실도 전했다. "100개가 넘는 공장이 돌아가지만 법을 지키는 곳은 하나도 없다"는 말에 김 장관은 "해결책을 고민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법을 새로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었다. 지금 있는 법만이라도 살아서 작동하게 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렇게 마주 선 김 장관과 노동자의 모습은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이날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장관 후보자가 만난 1호 노동자'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김 장관은 다시 그들을 찾았다. 이제는 진짜 '장관'의 이름을 달고서다. 그는 취임 후 첫 업무지시로 서울 종로구 주얼리 제조업체 밀집지역에 대한 사업장 감독을 주문했다. 4대 보험 가입, 근로계약 체결 여부, 기본적인 근로조건 점검이 대상이었다.

통상적으로 장관들의 취임 초기 행보는 산업안전 점검이나 간담회 등 무난한 이슈들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 장관은 가장 오래된 사각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보자 시절 본인을 찾아왔던 이들을 이번에는 그가 먼저 찾아간 셈이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현장을 먼저 찾는 장관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다만 장관이 현장을 찾는다 해서 곧바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장을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험이 제도의 틀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해야 한다. 장관 한 사람의 의지로 바뀌지 않는 현실을 노동자들은 이미 수년 간의 싸움으로 체감해왔다.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상징성도 결국 실천이 뒤따를 때에만 진짜 뉴스가 된다. 기대와 실망의 갈림길은 지금부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노동자들이 장관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서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김영훈을 만나게 해달라"는 외침보다 "김영훈이 우리에게 왔다"는 말이 익숙해져야 한다. 그때 '현장을 찾는 장관'은 이름값을 하게 될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