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승자독식' AI 사회 …소수의 선도기업과 슈퍼인재가 이끈다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AI(인공지능)가 세상을 총체적으로 바꾸며 세계 기술패권 전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우리의 생활은 물론 사회, 산업, 경제, 안보 등 국가와 기업의 미래 명운을 좌우할 전망이다. 더 나아가 세계를 움직이는 3대 대전환인 디지털·그린·문명 대전환이 궁극적 목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궁극적으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AI 대전환이 부각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대전환점을 맞이하며 우리 국가, 사회, 기업, 국민의 총체적 변화가 필수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누구도 생존이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대사적 변화를 주도하려면 인류 사회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인류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꾼 역사적 변천은 크게 보면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 다음으로 정보 사회로 바뀌어 왔다. 18세기 후반 1차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전환되고, 1970년대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촉발된 3차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스마트폰, 디지털 기술의 대중화로 초연결 사회가 전개되면서 정보 사회는 지식정보 사회로 심화되고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었다. 2022년 말 챗GPT 발표가 촉발한 AI 혁명은 정보 사회를 지능정보 사회 내지 초지능 사회로 심화시키며 인류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인류 사회의 변천 과정에서 생산 방식의 혁명, 직업과 계층 구조의 변화, 가치관 및 생활양식의 대전환 등 지대한 사회적 변화가 나타났고 이 변화에 대한 대응 역량에 따라 세계 국가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AI 혁명의 충격파는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크기, 범위,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AI 역량은 미래 세계 판도 변화에 결정적 요소로 작동할 전망이다. 우리 신정부가 시작부터 국가적 AI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전망에 부합하는 매우 긍정적 조치다.
 
AI 대전환 시대에 대응하는 국가 및 기업 경영 전략의 총체적 혁신이 중요하다. 정부 및 기관, 기업 시스템의 AI 대전환, 국민의 전 연령층에 대한 AI 평생교육 등은 기본이다. 정부 정책의 전략적 방향에 대한 사고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먼저 AI 기반 사회라 불리는 지능정보 사회는 산업 사회와 많은 면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 AI 등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지능정보 사회는 산업 사회와 달리 1위 기업이 독식하는 시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 하드웨어 중심 산업에서는 다원적 원가 구조로 상위 몇 개 기업이 시장을 분점할 수 있었던 반면에 향후 AI 등 소프트웨어 중심 산업에서는 1위 기업이 사실상 독식하게 된다. 현재의 미·중 갈등이 세계 패권전쟁으로 심화되며 세계가 양대 진영으로 블록화 되면 각 진영 1위의 두 기업이 각자의 시장을 지배하고 3위 이하 기업은 적자를 면하면 최선일 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 신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AI 3대 강국이 미국, 중국 다음의 3위가 되어서는 의미도 없고 실속도 없다. 즉, 세계 3위가 아니라 분야별로 세계 1위인 분야가 늘어나야 3대 강국의 의미와 실속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약점, 기회 및 위협요인을 분석해 보면 산업 AI 대전환(AX) 분야에서 반드시 세계 최강의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현재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로봇, 항공, 바이오, 방산 등 첨단 제조업의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를 AI와 융합하면 세계 최강의 제조 AX 역량도 갖게 되고 우리 첨단 제조업의 초격차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제조업 내의 다양한 산업군만이 아니라 의료, 교육, 금융 등 각 산업에 특화된 소위 버티컬(Vertical) AI에서 세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되면 AI 원천기술에서는 미국, 중국에 뒤지더라도 산업 특화 AX는 세계를 주도하는 실속 있는 AI 3대 강국이 될 수 있다.
 
둘째로, 과거 대한민국 경제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가 시장을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 사고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 AI 역량이 세계 3위면 잘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은 산업 사회의 ‘빠른 추격자’ 전략의 산물이다. AI 기반 사회에서 AI 3대 강국이 되려면 산업 AX 등 분야별 시장 주도자가 되겠다는 ‘퍼스트 무버’ 전략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AI의 기술적 리더십보다 AI의 목적을 주도할 수 있어야 진정한 ‘퍼스트 무버’다. 즉, 앞서 강조한 대로 인류의 지속가능성 실현과 같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목적을 제시하고 이의 수단으로서 AI를 활용해야 ‘퍼스트 무버’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AI를 통해 지속가능한 산업 성장 및 경쟁력을 제시하는 산업 AX 강국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로, AI 기반 사회에서는 산업 사회와 다른 기업 육성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산업 사회에서는 기업 생태계 전반의 기업 역량을 육성하는 정책이 많았다. 반면에 AI 기반 사회에서는 1위 기업이 독식하는 경향에 대응하여 기업 생태계의 혁신을 이끌고 갈 혁신 주도 기업 육성이 중요하다.
 
최근 맥킨지 글로벌연구소(MGI)에서 발표한 보고서가 기업 육성 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MGI는 미국, 독일, 영국의 8300개 주요 기업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소수의 선도 우수기업이 국가 생산성 성장의 대부분을 주도한다고 발표했다. 3개국 전체로는 2%의 선도 우수기업이 국가 생산성 성장의 63%를 차지하고 미국만 보면 5%의 선도 우수기업이 국가 생산성 성장의 80%를 차지하는 놀라운 분석 결과다. 이는 국가 생산성 성장은 기업 생태계 전체의 균형 성장이 아니라 소수의 선도 우수기업의 혁신 성장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이 보고서는 생산성 성장은 비용 절감 등 효율화도 필요하나 AI 등 신기술 적용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고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보여 주고 있다. 애플, 아마존, 홈디포, 엔비디아 등이 비즈니스 모델 혁신 및 고객 가치 창출을 통해 생산성의 폭발적 성장을 이룬 사례로 소개되었다.
 
본 보고서는 정책적으로 국가 생산성 성장을 위해 광범위한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소수의 선도 우수기업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1위 기업 독식의 AI 기반 사회에서 전체적 지원이 자칫 공멸을 초래할 수 있어, 소수의 혁신 기업을 집중 육성하여 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높여야 보다 많은 기업을 살릴 수 있다는 대국적 관점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과거 필자가 중소벤처기업부의 전신인 중소기업청의 장으로 재직할 당시만 해도 정부가 우수 중소기업은 지원할 필요가 없고 어려운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기조가 강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은 지원이 아니라 육성의 대상이고 우수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육성하여 글로벌 시장에 통하는 기업으로 만들면 한 개의 우수 기업이 수백 수천 개의 중소기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정부와 국회를 설득했던 중소기업 정책의 패러다임 혁신도 MGI 보고서와 같은 맥락이다.
 
넷째로 AI 기반 사회에서는 산업 사회와 다른 인재 양성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최근 메타가 CEO 마크 저커버그의 직접 지휘 아래 초고액 연봉을 앞세운 AI 인재 확보 전쟁을 벌인 것은 ‘AI는 많은 인력보다 소수의 슈퍼인재와 그들이 만든 집단적 혁신력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1명의 인재가 1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는 어록도 같은 맥락으로 미래 AI 기반 사회의 인재 양성 철학을 예측한 선견지명이다. 결국 기존의 보편적 인재 양성 정책과 슈퍼 인재 양성 정책은 보편성과 수월성을 보완하여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AI 기반 사회에 맞는 정책 대전환이 시급하다. AI 3대 강국, 우리는 할 수 있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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