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과거 한국 과학자들과 연구원들은 더 나은 연구 환경과 물질적 보상을 찾아 미국을 포함한 해외 학교나 기관으로 떠났다. 오랫동안 이어진 이 인재 유출(brain drain)은 한국의 부족한 과학 인프라와 경직된 교육 제도 문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한국은 연구개발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국내 대학과 기업들도 점차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 유출되었던 많은 인재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이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 내 정책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학 연구 예산을 삭감하고 대학들을 “좌파의 본거지”라며 공격하고 있고, 이에 따라 많은 학자들이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계 각국이 미국 학계에 환멸을 느낀 과학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유인책을 내놓고 있다. 더 나은 연구 환경, 자율성, 그리고 학문적 존중을 제공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미국에서 밀려난 학자들에게 새로운 안식처가 되고 있다.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안정된 제도적 기반 덕분에 토론토 대학교는 최근 몇 년간 미국 대학들에서 저명한 연구자들을 다수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는 최근 미국 학자 15명을 동시에 임용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독일 등 유럽 각국도 미국과 외교 및 무역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학자 및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 또한 해외 인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막대한 정부 지원과 광대한 연구 인프라, 국가 차원의 확고한 전략을 기반으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을 유치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일하던 중국 출신 과학자들이 미국 내 반중 감정 확산에 따라 대거 귀국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학문적 자유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검열과 정치적 간섭에 대한 우려 때문에 대부분 해외 학자들은 중국행을 꺼리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홍콩이 대안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중국 본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 창도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은 독특한 기회를 지니고 있다. 과학기술 강국을 향한 국가적 의지를 바탕으로 한국은 미국발 브레인 드레인의 수혜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아직 뒤처지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 대학과 연구기관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KAIST, 포스텍(POSTECH), 기초과학연구원(IBS) 등 세계적 수준의 기관들이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고 있다.
그동안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연구자들은 대부분 유학을 다녀온 내국인들이었다. 외국인 학자들은 여전히 드문 편이다. 이는 낮은 보상, 경직된 학문 및 교육 문화, 기업의 위계적 조직문화, 언어 장벽 등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이 여전히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고수하고 있으며, 승진이나 평가 시스템도 투명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 창의적·융합적 연구를 저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글로벌 연구개발 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4%를 넘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며, 과학기술을 국가 발전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삼성, SK, 현대, LG, 포스코 등 대기업들은 자사 연구소뿐 아니라 포스텍과 같은 연계 교육 기관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정부가 투자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은 2011년 출범 이후 바이오, 인공지능, 반도체, 물리학, 로봇, 배터리 등 핵심 분야에서 민관 협력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밖에 많은 한국 기관들이 이 같은 인재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공동으로 글로벌 AI 박사급 인재 유치 사업을 진행 중이다. 박사 후 과정 참가자들에게는 연 최대 9000만원의 고액 연봉, 연구비, 산업 협력 기회 등이 제공된다. 이는 단순한 국내 연구 역량 강화뿐 아니라 한국의 연구 환경을 국제화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노력은 산업 및 제조 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의 기초과학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 등 한국 브랜드는 이미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이들의 지속 가능한 성공은 결국 기초과학과 기술 혁신에 달려 있다.
다만 국내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도 있다. 과학과 공학 분야로 진출하려는 젊은 인재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수재들이 높은 보수와 사회적 지위 때문에 과학기술보다 의학을 선택하고 있다. 아직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브레인 게인 정책과 노력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막을 수도 있다. 세계적인 연구 성과, 국제 협력 사례, 그리고 귀국 연구자들의 성공 스토리를 널리 알림으로써 다음 세대 과학도들에게 영감을 주고, 전 세계 우수 인재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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