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취임한 지 불과 한 달이 지났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매우 활발한 행보를 보여왔다. 취임 직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 잇따라 통화를 했고, 이어 곧바로 캐나다로 날아가 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주요국 정상들과 회담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발생한 6개월 외교 공백을 고려할 때 이러한 숨 가쁜 외교 일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민주주의 한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정부는 이 모든 행보가 선거 기간 내내 이 대통령이 강조했던 '실용 외교'에 기반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전임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와 차별되는 개념이다. 윤 대통령이 민주주의, 인권 등 이념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의 동맹을 중시했다면, 이 대통령은 이념보다 경제적 이익과 전략적 실리를 우선시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강조한다. 지정학적 갈등과 강대국 간 경쟁이 격화된 불확실한 국제 질서 속에서 이념 중심의 외교는 오히려 경직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정작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의 외교 행보만으로는 실용 외교의 명확한 방향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일면에서는 실리를 추구하는 유연한 외교가 엿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이념이나 감정에 얽매인 모습도 공존한다.
실용주의의 단면은 우선 통화 외교에서 나타났다. 첫 번째 통화 상대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던 점은 예상대로였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은 역대 정부에서도 강조되어 왔고, 특히 방위비 분담, 관세 문제 등 다양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은 시급한 과제였다. G7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 회담을 시도했지만 미국의 대이란 공격 여파로 트럼프가 조기 귀국하면서 무산되었다.
두 번째 통화 상대는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였다. 이는 다소 의외라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 진보 정권은 대체로 중국과의 관계를 우선시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시진핑 주석과 두 번째로 통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과거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우선시한 것은 현실적 이익을 중시하는 실용 외교의 신호로 해석된다.
세 번째로 중국과 통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북한의 유일한 우방으로, 한반도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어 체코, 베트남 정상과 통화를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전임 대통령들이 주로 영국, 인도 등 전통적 강국과 우선 접촉했던 것과는 대조된다. 그러나 체코는 26조원 규모의 원전 건설 사업을 한국에 발주한 국가이고, 베트남은 한국의 세 번째 교역국이자 최대 해외 투자처다. 이런 선택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경제가 안보이고, 안보가 경제'라는 철학을 반영한다.
그러나 실용 외교와 어긋나는 행보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불참이다. 정부는 국내 현안과 중동 불안정성을 이유로 들었지만, 야권은 중국과 러시아의 눈치를 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나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에 동조하는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불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연대 약화를 의미할 수 있다. 특히 원전, 방산 등 유럽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이 활발해지는 상황에서의 불참은 실용 외교의 원칙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그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당시 정상회의를 주도했던 바이든, 기시다, 윤 대통령 모두가 물러난 현재, 이 대통령이 그 협력 체제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의 이질적 성향도 문제로 지적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일본 등 전통적 우방과의 동맹을 중시하는 인물로, 이른바 ‘동맹파’로 분류된다. 반면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은 자주 외교를 강조하며 남북 관계를 우선시하는 ‘자주파’의 대표 격이다. 서로 상반된 외교 철학을 가진 인사들이 이 대통령 주변에 배치되어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는 과거 정부에서도 반복된 문제이며, 실용 외교의 일관성을 위협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대통령 자신의 결단이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민족 자주와 국제 협력 사이에서 어떤 방향을 택할 것인가는 오직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실용 외교는 단순한 중도 노선이 아니라 각 사안에 대해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유연하고 전략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외교는 곧 국익이다. 이 대통령이 말뿐인 실용 외교를 넘어서 실질적인 외교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정책과 실행을 통해 검증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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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 2025-07-02 16:43:07개소리도작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