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테헤란 전경 [사진=AP·연합뉴스]
이란이 이란계 미국인 최소 4명을 억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십 년간 외국인과 이중국적자를 억류해 포로 교환과 동결 자금 반환 등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구사해왔던 이란이 미국과의 핵 협상 속 ‘인질 외교’를 재가동하는 모양새다. 지난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 이미 고조된 미·이란 간 정치적 긴장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가 인권단체, 변호사 및 비영리단체인 호스티지에이드월드와이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남성 2명, 여성 2명 등 최소 4명의 이란계 미국인이 이란에 구금 중이다. 구금된 이란계 미국인 4명은 모두 미국에 거주해왔으며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란을 방문했다.
이 가운데 3명은 감옥에 수감 중이며 1명은 출국이 금지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 2명은 작년에 구금됐으며, 나머지 2명은 6월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직후 보안요원들에게 체포됐다고 인권활동가통신(HRANA) 등 단체들은 전했다.
억류된 이들 중 한 명은 뉴욕 출신의 70세 유대인 남성이다. 보석 사업을 하는 그는 이란에서 이스라엘 여행과 관련해 심문받고 있다고 그의 동료, 친구 등은 전했다. 다른 한 명은 캘리포니아 출신 여성으로, 이란 내 악명높은 에빈교도소에 수감됐지만 이스라엘의 교도소 공습 이후 행방이 불분명한 상태다.
또 다른 여성은 지난해 12일 처음 수감돼 출국이 금지됐다. 지금은 풀려났지만 이란과 미국 여권 모두 당국에 압수됐다. 이 여성은 미국 기술회사에서 일하며 이란의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6월 전쟁’ 이후 그를 중범죄인 간첩 혐의로 기소했다.
레자 발리자데라는 미국인 기자도 수감돼 있다. 그는 미 국무부 산하 라디오자유유럽(RFE) 소속 페르시아어 뉴스매체 ‘라디오 파르다’의 전 직원이다. 라디오 파르다는 성명을 통해 발리자데가 작년 10월 이란에 가족들을 만나러 갔다가 체포됐으며, ‘적대적 정부와 협력’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익명의 이란 고위 당국자 2명은 이란이 뉴욕 남성과 캘리포니아 여성 등 미국인 2명을 구금했다고 확인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이들 고위 당국자들은 이번 구금이 이스라엘, 미국과 연계된 공작원 조직망을 찾아내기 위한 광범위한 단속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번 단속 조치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해외 거주 이란인들의 귀환을 독려하는 가운데 시행됐다. 이란 현지 언론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주 정보부 및 사법부와 협의해 해외 거주 이란인들의 귀환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NYT는 “지난 6월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동참해 핵시설 3곳을 폭격하고 파괴한 이후 이란과 미국의 정치적 분위기가 이번 구금 사건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담당 국장인 알리 바에즈는 “현재 이란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핵 외교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체포는 또 다른 중대한 분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HRANA의 부국장인 스카일러 톰슨은 이란이 ‘12일 전쟁’ 이후 강경 진압 과정에서 유대계 이란인 5명을 체포했고 추가로 35명을 소환해 조사했다고 말했다. 호스티지에이드월드와의드의 이사인 시아막 나마지는 “이란에 억류된 이들의 석방을 확보하는 일은 향후 이란과의 어떤 외교적 교섭에서도 미국의 핵심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 공습 이후 미·이란 간 핵협상은 재개되지 않았지만,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최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과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 특사가 문자 메시지로 직접 소통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부당한 미국인 억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들의 석방이 정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혀왔다.
미 국무부는 이란에서 미국인이 구금됐다는 보고를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성명에서 “개인정보 보호, 안전 및 운영상의 이유로 보고된 미국인 구금자에 대한 내부 또는 외교적 논의의 세부 사항은 공개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란에 부당하게 구금된 모든 사람들을 즉시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이란 유엔 대표부는 이번 구금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이란 정보부는 지난달 28일 성명을 통해 이란 전역 도시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스파이 또는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최소 2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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