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교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가자지구 완전 점령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인질 석방이 지연되고 휴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이스라엘은 군사작전 확대를 공식화하며 하마스 제거 이후의 가자 통치 계획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매체 N12 방송 및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 전역을 점령하기 위한 군사작전 확대 방안을 이번 주 중 군에 지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서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의 폭정으로부터 가자지구를 해방하겠다고 약속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에서 “정의 패배, 인질 석방, 그리고 가자가 더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전쟁 목표 달성을 위해 계속 함께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얄자미르 참모총장에게 “방침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임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주 장관들과 사적인 대화 자리에서 "(가자) 지구 점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이스라엘 고위 관리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우리는 가자지구의 완전 점령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문건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식적으로 합병할 의도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군(IDF)이 가자지구의 전반적인 행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검토 중인 계획 중 일부”라며 “정부의 방향과 일치한다”고 확인했다고 유로뉴스가 전했다.
다만 이러한 강경 노선은 가디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최근 발언과 배치된다. 사르 장관은 “가자지구를 장기 점령할 의도는 없다”며 “오직 안보적 우려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이스라엘 내각에서는 가자지구 완전 점령을 위한 군사작전 확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총 15명의 내각 중 5명이 찬성, 7명이 반대하고 있고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신베트 국장 직무대행 등 3명이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한편 미국은 하마스에 대해 인질 전원 석방과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가 이를 거부하면 이스라엘이 군사작전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최근 하마스가 1~2일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인질들의 영상을 연달아 공개하기도 하면서 이스라엘 내에서도 하마스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하마스는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을 조금씩 석방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데,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특사는 이를 두고 “조각난 방식의 거래는 효과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마스가 협상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데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국제 사회,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목소리 고조
다만 국제사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어 이스라엘의 가자 점령 시도에 역풍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10여 명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고 악시오스가 4일 보도했다. 로 카나 민주당 하원의원(캘리포니아) 등은 서한을 통해 “이런 비극적인 순간이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오랜 필요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 등 이스라엘의 야권 성향 전직 당국자들은 “전쟁을 끝내고, 인질을 귀환시키고, 고통을 멈추게 해달라”며 가자지구 작전 계획을 막아달라는 공개서한을 미국에 보냈다. 이 공개서한에는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전 국장 타미르 파르도 등 약 600명이 참여했다.
유엔 193개국 회원국 중 러시아, 중국, 스페인 등 147개국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겠다고 밝혔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영국과 캐나다도 동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같은 변화는 가자지구 인도주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도 기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전면 점령할 경우, 군사적 충돌을 넘어 국제법·인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들을 제3국으로 이주시킨 뒤, 가자지구를 고급 리조트 등을 갖춘 ‘중동의 리비에라’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두고 “좋은 계획”이라며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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