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이재명 정부에 북한이 다시 한번 찬물을 끼얹었다. 남한이 확성기를 철거하자 북한도 호응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고 철거할 의향도 없다”고 밝혔다(25.8.14). 정례 한미연합군사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의 훈련(8.18 시작)을 일부 조정한 것을 두고도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되며 헛수고로 될 뿐”이라고 폄하했다. 한마디로 “한국이 확성기를 철거하든, 방송을 중단하든,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의 정상회담(8.15) 이후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반박하면서 “미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의도는 남한의 대북 긴장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태도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남한의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남한에 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들이 원하는 남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단초는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25.7.28)에서 찾을 수 있다. 두 가지다. 하나는 남한이 견지하고 있는 통일에 대한 방식이다. 북한은 남한이 흡수통일의 의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북한은 통일이 곧 자신들의 체제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한미연합군사연습을 바탕으로 하는 한미군사동맹이다. 남한이 비록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앞세우고 있지만,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하는 군사연습은 북한에게는 명백한 대결 기도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한은 진보, 보수정권 가릴 것 없이 한미동맹을 통해 흡수통일을 실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과 상황을 바꿀 방편은 없는가? 북한이 말하는 “흡수통일 망령”과 “대결 기도”를 한국 정부가 버리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달리 말해 그와 같은 의지와 기도를 버리라는 요구나 같다. 김여정이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중단 여부를 그들 판단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도다. “미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고 했지만, 김여정 부부장은 미국이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와 그 능력' 등 '변화된 현실' 인정을 전제로 미국에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7.29).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면, 핵 군축이나 군사적 충돌 위험 관리 등 다른 목적의 대화엔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의 해결은 어디에 있는가? 첫 번째로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흡수통일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이다.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북을 향해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북한의 우려가 불식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통일부의 명칭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우리 헌법 제3조(영토조항)에는 북한 지역이 대한민국의 영토로 되어 있다. 헌법 제4조(통일조항)는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당연한 논리지만 이대로라면 북한의 체제는 없어지는 것이다. 북한이 스스로 사라지거나, 사라지게 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로는 한미동맹을 통한 군사연습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이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사연습에 대단히 민감하다. 수십 년 전부터 북한 정권을 없애버리려는 기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군사훈련의 내용과 전개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동북아 패권 유지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은 물론, 한미연합군사연습의 향방도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달려 있음을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과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인 평화 정착’의 상태를 확고한 철학으로 삼고 필요한 ‘행동’을 일관되게 취해나가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재명 정부가 취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다음의 3가지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미국을 추동하여 북·미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미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면 남북관계의 개선은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북한 핵문제의 선 해결이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이 되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일이다. 오히려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관계를 개선해야 함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한국 외교의 역량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둘째,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어떤 형태로든 대폭 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다자 안보 협력 체제 구축을 제의하는 것은 어떤가? 한미군사동맹이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닌,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포괄적 틀 안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을 통해 한국의 안보 자율성을 증진해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과 부담을 줄여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셋째, 흡수통일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보다 적극적으로 불식시키는 일이다. ‘흡수통일 배제’라는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의 언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강력한 내부 환경 조성이 요구된다.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이나 통일조항을 명시적으로 바꾸기 어렵다면 먼저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서 공식 ‘인정’하는 형식이나 절차가 필요하다. 북한을 라오스나 캄보디아처럼 외교적 관계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 정부는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에 집중해야 한다. 남북이 교류·협력의 당당한 개별 당사자가 되어 연결하는 것이다. 북녘을 통한 동북아 물류 길을 놓고, 남북한 주민이 이웃 국가 드나들 듯 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연결이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다. 연결과 그 유지가 북한의 긍정적 변화와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남북을 ‘사실상의 통일’ 상태로 가져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관계의 목표를 바로 여기에 두라.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진심, 끈기 있게 북한과 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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