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칼럼니스트]
김건희 여사가 결국 구속 수감되었다. 역대 대통령 배우자 중 수사기관에 공개 출석해 포토라인에 선 것도, 구속된 것도 김 여사가 처음이다. 전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구속 수감된 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달 10일부터 구치소에 재수감 중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3대 특검으로부터 받는 혐의는 총 35건에 달한다. 비록 재판이 한시적으로 중단되긴 했지만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범죄 혐의도 10건이 넘는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어쩌다가 그런 신세가 되었나?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정권은 출범 전부터 '김건희 리스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좌천되어 변방을 떠돌던 검사 윤석열이 적폐청산의 도구로 발탁된 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벼락출세하고,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문재인 정권에 맞서는 투사로 변신하더니 급기야 대권을 거머쥐는 일련의 극적인 과정에서 김 여사의 과거 행적과 신중하지 못한 처신은 늘 언론과 민주당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윤석열 정권의 아킬레스건 김건희 여사는 정쟁에 능한 민주당에는 꽃놀이패와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일국의 영부인이 되었으면 응당 언행과 처신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오히려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 개입을 일삼고 명품백 등 뇌물 수수 논란과 각종 의혹에 휩싸임으로써 정권의 최대 불안 요소가 되고 말았다. 퍼스트레이디 권력의 성공 요체는 '은밀함'에 있다는데 김 여사는 도처에 흔적을 남겼고 매사 꼬리를 밟혔다. 툭하면 터져나온 녹취록 파문이 대표적이다. "그럴 거면 들키지나 말지" 하는 탄식이 나올 만큼 그 '조심성 없음'에 당시 여권의 속앓이는 엄청났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된 영부인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대통령 또한 민심에 역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윤 전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를 그저 감쌌고, 침묵했고, 때론 전면 방어에 나섰다. 언론의 거듭된 지적과 법조계 선배, 정치권 원로들의 충고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고언하는 참모에 격노하고 심지어 내치는 일이 거듭되자 주변에는 예스맨들과 김 여사가 심어놓은 측근들만 남았다. 윤 전 대통령의 상징자본 공정과 상식은 헛말이 되었고, 김여사를 지칭하는 용어는 대통령을 의미하는 'V1'보다 급이 높은 '브이제로(V0)'가 됐다. '대통령은 장님 무사, 여사는 장님 어깨에 올라탄 주술사'라는 명태균의 비유가 이들 부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상징한다.
김 여사를 둘러싼 잡음과 논란은 민심 이반과 총선 참패, 국정동력의 상실로 이어졌다. 자폭성 비상계엄 발동의 심리적 근저에도 명태균 게이트로 코너에 몰린 부인에 대한 보호본능이 자리하고 있었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하니 윤석열 정권의 실패와 몰락의 일등공신이 김건희 여사라는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사랑하는 여자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 절대권력자... 고금의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서사 아니던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전한(前漢)의 전성기를 이끈 한무제(漢武帝) 때 활약하던 궁중 가수 이연년(李延年)은 음악적 재능이 출중했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작곡, 편곡에도 능하고 춤 솜씨도 좋아 황제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 하루는 무제 앞에서 춤을 추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니
세상에 견줄 이 없이 홀로 빼어나네.
한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우네.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우는 것을 어찌 모르랴마는
그런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렵다네.
北方有佳人 絕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再難得
노래를 다 들은 무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세상에 실제로 그런 여자가 있을까?" 옆에 있던 무제의 누나 평양공주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연년의 누이가 바로 그런 미인입니다."
과연 이연년의 누이는 천하절색이었다. 일찌기 마오쩌둥이 말했다. “한무제와 진시황의 위대함은 서로 필적한다”고.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던가. 한무제도 여색을 탐했다. 그런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한 여인이 연년의 누이, 즉 이부인(李夫人)이다. ('부인'이란 칭호는 후궁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이부인은 병약해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한무제는 황후의 예로 장사 지낸 뒤 이부인의 초상화를 침실에 걸어놓을 만큼 그녀를 잊지 못했다.
이연년의 시구에서 성어 '경성경국(傾城傾國)'이 유래했다. 경성경국은 두보, 백거이 등 일세를 풍미한 문인들의 작품에 즐겨 인용되며 여성의 치명적 아름다움을 일컫는 대표 성어로 자리잡았다. 우리도 흔히 쓰는 성어 '경국지색(傾國之色)'은 후대의 사관이 한무제와 이부인의 일화를 전하며 '나라를 기울게 할 만한 미모'란 표현을 씀으로써 생겨났다(夫人之美, 莫能名也. 常有傾國之色). 성어를 낳을 만큼 미모가 뛰어났던 이부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기도 했거니와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한무제도 그녀로 인해 정사를 소홀히 했다는 기록은 없다.
여색에 빠져 자신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 군주들은 따로 있다.
달기(妲己)와 더불어 주지육림 속에서 살다가 은나라를 말아먹은 주왕(紂王), 포사(褒姒)를 웃게 하려고 장난삼아 봉화를 올려 제후들의 신뢰를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서주의 마지막 군주 유왕(幽王), 서시(西施)의 미색에 혹해 와신(臥薪)의 교훈을 망각하고 월나라에 패망한 오나라 왕 부차, 양귀비와의 사랑놀음에 취해 국사를 멀리하다가 안사의 난을 부른 당 현종 등의 애정사야말로 '경성경국'의 대표 사례들이고, 그들이 사랑했던 절세미인들은 실로 한 시대의 몰락과 교차하며 ‘경국지색’의 전형이 되었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 6일 특검에 출석하면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국민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표현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진심일까? 허나 지난 3년간 김 여사가 보인 모습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깨달음은 왜 언제나 늦게 오는 걸까?
김건희 여사가 '사고'를 칠 때마다 소위 '김건희 라인' 비서관들이 "우리 여사님은 경국지색"이라며 심기 관리를 했다고 한다. 경국지색의 함의나 제대로 알고 그런 말을 주고받았는지 궁금하다. '십상시'니 '7간신'이니 하는 구설이 끊이지 않던 비서관들답게 김 여사의 미모를 치켜세우는 아부성 발언이었겠지만, 윤석열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말이 씨가 되었다고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윤 전 대통령은 김 여사를 과잉보호하다가 민심을 잃고 정권을 잃고 패가망신 지경에 이르렀다. 김 여사는 끝내 구속되었고 호미로 막을 수도 있었던 범죄 혐의는 가래로도 못 막을 만큼 커져버렸다. 그뿐인가. 국민의힘은 '윤건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보수진영은 괴멸 직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폭주한들 견제할 세력이 사라졌다. 민주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허망한 몰락이 여색에 빠져 나라를 기울게 하고 혼군(昏君)이란 딱지가 붙은 군주들의 전철을 밟은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면 과한 표현일까?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 둘 밝혀지는 윤 전 대통령 부부의 전횡과 기행을 보면 역사 속 망국의 사례들이 자꾸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인간사 흥망성쇠의 법칙은 예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3대 특검으로부터 받는 혐의는 총 35건에 달한다. 비록 재판이 한시적으로 중단되긴 했지만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범죄 혐의도 10건이 넘는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어쩌다가 그런 신세가 되었나?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정권은 출범 전부터 '김건희 리스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좌천되어 변방을 떠돌던 검사 윤석열이 적폐청산의 도구로 발탁된 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벼락출세하고,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문재인 정권에 맞서는 투사로 변신하더니 급기야 대권을 거머쥐는 일련의 극적인 과정에서 김 여사의 과거 행적과 신중하지 못한 처신은 늘 언론과 민주당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윤석열 정권의 아킬레스건 김건희 여사는 정쟁에 능한 민주당에는 꽃놀이패와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일국의 영부인이 되었으면 응당 언행과 처신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오히려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 개입을 일삼고 명품백 등 뇌물 수수 논란과 각종 의혹에 휩싸임으로써 정권의 최대 불안 요소가 되고 말았다. 퍼스트레이디 권력의 성공 요체는 '은밀함'에 있다는데 김 여사는 도처에 흔적을 남겼고 매사 꼬리를 밟혔다. 툭하면 터져나온 녹취록 파문이 대표적이다. "그럴 거면 들키지나 말지" 하는 탄식이 나올 만큼 그 '조심성 없음'에 당시 여권의 속앓이는 엄청났다.
김 여사를 둘러싼 잡음과 논란은 민심 이반과 총선 참패, 국정동력의 상실로 이어졌다. 자폭성 비상계엄 발동의 심리적 근저에도 명태균 게이트로 코너에 몰린 부인에 대한 보호본능이 자리하고 있었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하니 윤석열 정권의 실패와 몰락의 일등공신이 김건희 여사라는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사랑하는 여자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 절대권력자... 고금의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서사 아니던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전한(前漢)의 전성기를 이끈 한무제(漢武帝) 때 활약하던 궁중 가수 이연년(李延年)은 음악적 재능이 출중했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작곡, 편곡에도 능하고 춤 솜씨도 좋아 황제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 하루는 무제 앞에서 춤을 추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니
세상에 견줄 이 없이 홀로 빼어나네.
한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우네.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우는 것을 어찌 모르랴마는
그런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렵다네.
北方有佳人 絕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再難得
노래를 다 들은 무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세상에 실제로 그런 여자가 있을까?" 옆에 있던 무제의 누나 평양공주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연년의 누이가 바로 그런 미인입니다."
과연 이연년의 누이는 천하절색이었다. 일찌기 마오쩌둥이 말했다. “한무제와 진시황의 위대함은 서로 필적한다”고.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던가. 한무제도 여색을 탐했다. 그런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한 여인이 연년의 누이, 즉 이부인(李夫人)이다. ('부인'이란 칭호는 후궁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이부인은 병약해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한무제는 황후의 예로 장사 지낸 뒤 이부인의 초상화를 침실에 걸어놓을 만큼 그녀를 잊지 못했다.
이연년의 시구에서 성어 '경성경국(傾城傾國)'이 유래했다. 경성경국은 두보, 백거이 등 일세를 풍미한 문인들의 작품에 즐겨 인용되며 여성의 치명적 아름다움을 일컫는 대표 성어로 자리잡았다. 우리도 흔히 쓰는 성어 '경국지색(傾國之色)'은 후대의 사관이 한무제와 이부인의 일화를 전하며 '나라를 기울게 할 만한 미모'란 표현을 씀으로써 생겨났다(夫人之美, 莫能名也. 常有傾國之色). 성어를 낳을 만큼 미모가 뛰어났던 이부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기도 했거니와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한무제도 그녀로 인해 정사를 소홀히 했다는 기록은 없다.
여색에 빠져 자신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 군주들은 따로 있다.
달기(妲己)와 더불어 주지육림 속에서 살다가 은나라를 말아먹은 주왕(紂王), 포사(褒姒)를 웃게 하려고 장난삼아 봉화를 올려 제후들의 신뢰를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서주의 마지막 군주 유왕(幽王), 서시(西施)의 미색에 혹해 와신(臥薪)의 교훈을 망각하고 월나라에 패망한 오나라 왕 부차, 양귀비와의 사랑놀음에 취해 국사를 멀리하다가 안사의 난을 부른 당 현종 등의 애정사야말로 '경성경국'의 대표 사례들이고, 그들이 사랑했던 절세미인들은 실로 한 시대의 몰락과 교차하며 ‘경국지색’의 전형이 되었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 6일 특검에 출석하면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국민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표현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진심일까? 허나 지난 3년간 김 여사가 보인 모습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깨달음은 왜 언제나 늦게 오는 걸까?
김건희 여사가 '사고'를 칠 때마다 소위 '김건희 라인' 비서관들이 "우리 여사님은 경국지색"이라며 심기 관리를 했다고 한다. 경국지색의 함의나 제대로 알고 그런 말을 주고받았는지 궁금하다. '십상시'니 '7간신'이니 하는 구설이 끊이지 않던 비서관들답게 김 여사의 미모를 치켜세우는 아부성 발언이었겠지만, 윤석열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말이 씨가 되었다고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윤 전 대통령은 김 여사를 과잉보호하다가 민심을 잃고 정권을 잃고 패가망신 지경에 이르렀다. 김 여사는 끝내 구속되었고 호미로 막을 수도 있었던 범죄 혐의는 가래로도 못 막을 만큼 커져버렸다. 그뿐인가. 국민의힘은 '윤건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보수진영은 괴멸 직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폭주한들 견제할 세력이 사라졌다. 민주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허망한 몰락이 여색에 빠져 나라를 기울게 하고 혼군(昏君)이란 딱지가 붙은 군주들의 전철을 밟은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면 과한 표현일까?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 둘 밝혀지는 윤 전 대통령 부부의 전횡과 기행을 보면 역사 속 망국의 사례들이 자꾸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인간사 흥망성쇠의 법칙은 예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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