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럽 정상들이 참석한 백악관 회의에서 영토 문제는 공식 의제로 다뤄지지 않은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이 “영토 문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전 조건으로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 할양을 요구한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에 극렬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휴전 및 종전에 이르기 까지는 험난한 회담이 예상된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 및 유럽 정상들과의 회담을 마치고 전쟁 종식을 위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양자 회담을 할 준비가 됐다며 영토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직접 합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어떠한 조건도 없이 만나야 한다”며 “양자 회담 조건으로 (러시아에) 휴전을 요구하면 러시아는 우리가 협상을 방해한다고 비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영토 문제에 대해 장시간 논의했다”며 “영토 문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함께 결정할 사안이며 회담의 정확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미국의 안보 보장에 앞서 우크라이나의 영토 안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 그건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우린 그 문제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및 종전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도 우크라이나 영토 관련 질문에는 “오늘 우리는 그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영토 문제에 있어서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3자 회담, 그리고 아마도 그 이후의 추가 협의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휴전 조건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 총 6600㎢ 규모의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을 할양받는 대신 수미·하르키우 일부 점령지(약 440㎢)를 반환하고, 원전이 위치한 자포리자와 헤르손 일부 지역은 전선을 현 상태에서 동결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러시아는 자포리자 원전을 통제하고 있고, 도네츠크 75%와 루한스크 전역을 장악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장악한 상태다. 돈바스 지역은 철강과 석탄, 희토류 등이 풍부하고 헤르손과 자포리자는 유럽의 대표적 주요 곡창 지대로 푸틴 대통령이 줄곧 눈독을 들여왔던 곳이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 역시 빠른 종전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측의 요구 사항을 수락할 것을 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에서 “그들(유럽)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제1의 방어선”이라며 “현재의 전선을 고려해 가능한 영토 교환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슬픈 일이지만, 그 전선은 매우 분명하다”면서 “이 모든 것(안전 보장과 영토 교환)의 끝에 평화 협정이 이뤄질 것으로 믿으며,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영토 포기에 매우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만큼 영토 관련 논의 역시 가시밭길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날 제시한 미국산 무기 구매 조건이 포함된 안보 협력안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전체를 가져가는 대신 현재 전선을 동결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완전히 장악할 경우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드니프로 등까지 위협할 수 있어 사실상 전쟁 목표를 달성해 주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주독 미국대사를 역임했던 제임스 빈데나겔 독일마셜펀드(GMF) 방문학자는 "평화 협정을 달성하기 까지는 매우, 매우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라며 "푸틴이 말한 것은 그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평화 협상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 그러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CNBC에 말했다.
또한 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 영토를 무력으로 차지하게 될 경우,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민주주의·인권·노동 담당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데이비드 크레이머 조지 W 부시 연구소장은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 중에는 대만인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지원을 지속하는 방법이 결국 대만에 대한 중국의 생각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파장과 영향을 미치는 충돌이다"고 미국 매체 PBS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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