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의 C] 화폭에 담긴 진한 그리움… 김환기의 섬, 사랑, 친구, 조국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과천관 김환기展

  • 덕수궁 <향수, 고향을 그리다> 고향 가좌도 모티브로 풀어낸 작품 전시

  • 과천관 <한국근현대미술 II> 작가의 방에선 공간향 조성해 몰입감 더해

김환기 〈새벽 3〉 19641965 캔버스에 유화 물감 1769×1096cm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새벽 #3>, 1964~1965, 캔버스에 유화 물감, 176.9×109.6㎝,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애인이 있는 곳이 고향인 것 같아. 그 쓸쓸한 이방인으로서는 파리에서 혼자서 어떻게 살아낼 수 있겠나 말이야. 나 혼자서는 '파리 영주'는 생각할 수도 없으려니와 추호도 자신이 없어. 허나 너와 더불어 있다면 난 가능할 것 같아. 같은 게 아니라 자신이 있어. 조국이 더 큰 거라면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이기도 해.”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 아내에게 주는 편지(191쪽)
 
“조국이라는 게, 고향이라는 게 부모 핏줄 이상 가나 봐. 그 조국이 한시도 안 그리울 때가 없어. 그리고 우리 집이." <환기 인 뉴욕:김환기의 뉴욕일기> 중 
1963년 12월 12일 일기(20쪽)
 
화가 김환기(1913~1974년)가 남긴 에세이와 일기 곳곳에는 향수(鄕愁)가 사무친다. 그는 고향 전라남도 기좌도(현 안좌도)를 떠나 서울로, 그 이후엔 도쿄, 파리, 뉴욕에서 타향살이했다. 그의 향수는 '망망한 바다 위 콩알 같은 섬’인 고향 기좌도를 향한 것만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에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땐 서울을, 화가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파리와 뉴욕에 갔을 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조국을 그리워했다. 

김환기는 타지에서 무수한 점을 찍으면서 조국의 강산을 생각했다.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뉴욕일기, 1970년 1월 27일, 71쪽)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과 과천관에는 김환기의 향수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전시들이 마련됐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향수, 고향을 그리다>에서는 김환기가 고향 섬의 봄을 기억하며 제작한 <종달새 노래할 때>를 비롯해 <섬 스케치> <운월> 등을 볼 수 있다. 그는 기좌도의 푸른 섬과 하늘, 바다에 비친 달을 모티프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실현했다. 
 
MMCA 과천 상설전한국근현대미술 ll 전시전경
MMCA 과천 상설전'한국근현대미술 ll' 전시전경

그에게 기좌도는 꿈같은 섬이면서 잊힌 곳이었고, 어려서 시집간 누나를 보기 위해 홀로 다닌 산길과 바닷길이었다. 또 쑥떡이기도 했다. “오늘이 음력 2월 29일. 내 60년 생일인가. 어린 시절 섬에서 쑥떡 먹던 일이 생각난다.”(뉴욕일기, 1973년 3월 23일)
 
아울러 아내, 자녀, 친구 등 인간에 대한 향수이자 아름다운 항아리가 있고 뻐꾸기가 노래하는 조국을 향한 향수이기도 했다. 파리에서는 늦은 시간 택시를 잡기 위해 종로거리를 휘청거리는 친구들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고, 뉴욕에서는 '친구를,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를,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를' 생각했다. 

파리 시절엔 한국에 두고온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자책했다. “서울의 추위에 그 구공탄 한 덩이 두 덩이 나르는 너희들 모습, 그것마저 나를 것도 없어 떨고 있는 너희들의 모습이 어찌 마음에서 떠날 새가 있으랴.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왜 그토록 너희들에게 뼈가 녹고 숨이 끊어질 그런 고생을 시키고 있을까. 영숙아, 아버지 엄마는 미쳤지?"(다시 만나랴, 150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한국근현대미술 II>의 김환기를 조명하는 작가의 방 ‘푸른 여백, 마음의 풍경’에서는 그의 삶과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향 노스탤지아를 음미할 수 있다.

김환기에게 고향은 정체성이기도 했다.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철두철미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다시 만나랴, 210쪽)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지음 환기재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지음, 환기미술관
Whanki in New York  김환기의 뉴욕일기 김환기 지음 환기미술관
Whanki in New York : 김환기의 뉴욕일기, 김환기 지음, 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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