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쭉슥쾌' 건배사처럼 유쾌, 상쾌, 통쾌 함께 성장하는 한국·베트남 미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한국과 베트남은 지난 수십 년간 빠른 속도로 관계를 심화시키며 아시아 지역에서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해 왔다. 전쟁의 기억을 넘어선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 교류 전반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한류와 베트남의 젊은 인구구조가 맞물리며 문화와 산업 전반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외교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중국 등 외세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침략과 간섭을 받아온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며, 각자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낸 경험은 양국의 강한 유대감을 가지도록 한다. 또한 유교와 한자 문화권의 전통은 두 나라 사회에 여전히 깊게 남아 있어 언어, 가치관, 생활 문화 전반에서 상호 이해를 촉진한다. 결혼과 인적 교류를 통해 ‘사돈의 나라’, 그리고 ‘엄마의 나라’로 불릴 만큼 가까운 사회적 관계망도 형성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두 나라는 국제통상의 본질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모범적 사례이다. 국제통상의 핵심은 분업과 협업을 통해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국은 자본과 기술, 고도화된 산업 경험을 제공하고, 베트남은 젊고 풍부한 노동력과 제조업 기반을 제공한다. 그 결과 전자, 스마트폰, 섬유, 건설,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며 상호 보완적 구조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867억 달러로 20년 전보다 29배 증가했으며, 한국의 대베트남 누적 투자액은 920억 달러, 1만개 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베트남은 최근 수년간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하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흥국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연평균 6%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제조업과 수출 주도형 구조를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 한국 기업들 또한 베트남을 ‘포스트 차이나’ 전략의 거점으로 삼아 활발히 진출하고 있으며 자유무역협정 확대는 양국 간 경제적 잠재력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정치·외교적으로 베트남은 미·중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 외교를 펼치며 아세안 국가들 내에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과는 긴장과 협력을 반복했으나 동시에 미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심화하며 남중국해 문제의 당사국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다층적 외교는 국가 안보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견인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한편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베트남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 있고 한국과의 협력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과 베트남은 양국이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가 되려면 단순한 경제 이해를 넘는 장기적 신뢰와 제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문화적으로 베트남은 젊고 활기찬 인구구조를 바탕으로 IT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불교와 유교적 전통 위에서도 외부 문화 수용력이 강하여 한국의 대중문화 또한 널리 확산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2021년 세계 최초로 초·중등 교육과정에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채택했으며 토픽(TOPIK) 응시자는 5년 만에 1만6000명에서 6만3000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2025년 기준으로는 한국어 및 한국학 전공이 개설된 대학교가 48곳에 이를 정도로 교육·문화 차원의 교류가 제도적으로도 뿌리내리고 있다. 관광 산업 또한 하롱베이, 다낭, 호이안 등으로 대표되며 지속적 성장의 축이 되고 있다.
 
이제 협력은 경제를 넘어 군사 분야로도 확대되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의 K9 자주포를 도입하며 K-방산 대열에 합류했다. K-방산 무기를 공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계적으로 무기를 수출하고 수입하는 차원을 넘어 안보와 국방 영역에서도 신뢰와 협력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트남이 여전히 비동맹 외교를 중시하며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군사 협력은 언제든 조정될 수 있다 할지라도 베트남이 한국의 무기를 수입한다는 사실은 양국 간 밀접한 유대를 제공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맥락 속에서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8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은 또럼(Tô Lâm)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와 정상회담을 하고 ‘한국-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심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베트남 최고 지도자의 방한은 11년 만이며 양국은 2030년까지 무역 규모를 1.5배 확대해 15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며 경제 협력을 고도화할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양국 정상회담 뒤 이어진 만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건배사로 “Chúc Sức Khỏe”를 제안했다. 이는 한국어에서 한자 ‘축(祝)’에서 유래한 ‘Chúc’과 베트남어로 건강을 뜻하는 ‘Sức khỏe’를 결합한 표현으로, 이는 양국의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성을 보여주며 ‘Sức khỏe’의 ‘khỏe(쾌)’ 발음이 주는 느낌상 양국 관계가 ‘유쾌(愉快) 상쾌(爽快) 통쾌(痛快)’하게 뻗어나가기를 기원하는 메시지였다. 짧은 건배사였지만 그것은 양국이 앞으로 어떤 관계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최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적 보호무역과 관세 정책은 세계 경제 협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콩나물시루 속에서도 누워서 클 놈은 누워서 크고, 클 놈은 결국 크듯이 신뢰와 협력이 있다면 제약 속에서도 성장은 가능하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바로 그러한 상생의 모델이다. 과거의 상처를 넘어 화해를 이뤘고, 문화적 공통성을 공유하며, 경제·군사 협력을 동시에 확대해 가는 두 나라는 단순한 파트너를 넘어 운명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이 함께 손을 맞잡는 순간, 그것은 양국의 번영을 넘어 아세안과 아시아 전체의 안정과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두 나라는 이제 지역적 파트너를 넘어 세계적 공공재를 함께 만들어가는 책임 있는 동반자로 나아가야 한다.
 
번역학을 전공한 필자는 베트남의 언어·사회·문화적인 호기심과 베트남이 지닌 매력에서 비롯되어 시작한 또 다른 하나의 전공으로 베트남어를 공부한 입장에서 환상의 ‘캐미’를 유지하는 베트남과 한국, 양국의 관계를 지켜보며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 한국과 베트남이 앞으로도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하게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아시아 시대에 두 나라가 번영하는 길이다. 국내외 베트남 연구의 대가인 배양수 교수는 하노이의 먼지도 사랑한다고 했다. 하노이의 경제개발로 인해 먼지 날리는 베트남에 대한 그의 강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호찌민의 ‘스콜(squall)’, ‘메콩의 습기’도 사랑한다고나 할까!

두 나라는 사람이 오가고, 돈과 문화가 흐르더니 이제는 무기까지 오간다. 다음의 경구는 미국의 사업가이자 대부호였던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남긴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가 남긴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이 말은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잘 대변해 주는 듯하다. “A friendship founded on business is better than a business founded on friendship(사업을 바탕으로 한 우정이 우정을 바탕으로 한 사업보다 낫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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