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간 반도체 주도권 싸움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수시로 변하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책 변화에 대응하고 기술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14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4차 고위급 무역회담을 열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추가 회담이 이어지지만 합의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회담에 앞서 양국이 반도체 규제안을 상호 교환하는 등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2일 GMC반도체, 지춘반도체 등 23개 중국 기업을 포함한 32개 반도체 회사를 수출규제 명단에 추가했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미국산 아날로그칩(40나노미터 이상 범용 인터페이스 칩, 게이트 드라이버 칩 등)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한다고 반격했다.
미·중 반도체 갈등이 갈수록 수위를 더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요 고객이자 생산시설 소재지인 탓이다.
최근 한국 반도체 산업은 혼란 그 자체다. 지난 7월 미국이 중국에 엔비디아의 저사양 인공지능(AI) 반도체 'H20' 수출을 재허용하며 H20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3) 등 수출길이 다시 열리는가 했다.
하지만 중국은 보안 문제를 들어 자국 테크 기업들의 H20 칩 수입을 금지하도록 권고했고, 엔비디아도 결국 삼성전자 등에 H20 부품 생산을 일시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간만의 중국 수출 물량 확대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공장에만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을 금지하면서 중국 내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 매년 장비 수출 물량을 승인해주는 방식으로 반입을 허용할 수 있다고 여지를 뒀지만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았다. 미·중 간 변칙 플레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형국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에 따른 손실을 일정 부분 감내하고,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실리를 챙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례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와 미국산 반도체 수출 사안에 있어서 모두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 같은 정책이 미국에도 손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미국 행보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장기적 안목의 투자와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 또한 미국의 수출 규제에 맞서 반도체 내재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시장 변화를 면밀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압박과 대중 수출 규제가 자국 기업과 경제에도 손해를 입힌다는 반발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협상력을 갖기 위해서는 사안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실리적 관점에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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