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제철이 인수한 US스틸의 미국 내 공장 가동 중단 계획을 미국 정부가 저지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US스틸의 '황금주'를 근거로 경영에 개입하면서 일본제철의 US스틸 재건 계획이 시작부터 차질을 빚게 됐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황금주' 권한을 행사해 당초 11월 예정이었던 US스틸의 일리노이주 그래니트시티 제철소 가동 중단을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US스틸 인수 후에도 경영의 어려운 점이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일본제철은 올해 US스틸을 인수한 후 미국 내 공장 가운데 경쟁력 있는 설비를 중심으로 한 재편을 추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일리노이주의 그래니트시티 제철소는 2027년까지만 유지하기로 했다. 그래니트시티 제철소는 2023년 철강 생산을 중단하고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강판을 압연하는 공정만 가동 중이다.
US스틸은 9월 초 이같은 계획을 그래니트시티 제철소의 노동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강한 정치력을 지닌 미국철강노조(USW)가 제철소 가동 중단 계획에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 확대를 중시하는 미국 정부 역시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US스틸의 데이비드 브릿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행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면 대통령이 황금주를 발동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그래니트 시티 제철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 시절부터 철강 부흥의 상징으로 언급해온 곳이다. 이후 US스틸은 계획 철회를 인정한 뒤 "일리노이주 제철소에서 생산을 지속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방침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미국 정부에 넘긴 황금주의 존재가 있었다.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 당시 안보상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국가안보협정을 체결하고 황금주도 발행했다. 이 황금주는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는 대통령이 아닌 재무부와 상무부로 이양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확보한 황금주는 1주이지만 중요 경영 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황금주에는 미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미국 내 기존 제조 거점의 폐쇄·휴업'이나 '생산·고용의 미국 외 이전' 등을 실행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근거로 미국 정부가 경영에 개입한 것이다.
US스틸 인수 당시 하시모토 에이지 회장은 황금주를 넘겨 주어도 "경영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US스틸 재건을 위한 첫 걸음부터 좌절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일본제철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미국 제조업 부흥을 지원하기 위해 2024년 1418만톤이었던 US스틸의 조강 생산량을 향후 10년간 2000만톤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제철소 신설 등을 통해 고용 확대에도 나설 방침이다. 이미 US스틸을 통해 2028년까지 총액 약 110억 달러(약 15조4000억원)를 추가 투자할 것을 공표했고, 2029년 이후 가동을 목표로 전기로 방식 제철소 건설을 위한 40억 달러(약 5조6000억원) 규모 투자도 검토 중이다.
단 현재는 미국 내 생산 능력 확대에 집중하고 있는 단계로, 이를 위해 노후화된 거점 등 일부 공장의 가동 중단을 계획하고 있다. 닛케이는 "이번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박으로 생산 재편 등의 국면이 도래했을 때 경영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사례는 다른 일본 기업들에게도 교훈을 남긴 셈이 됐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총액 5500억 달러(약 767조 91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해각서에는 대미 투자 안건을 '미국 대통령이 선정한다'고 명시됐고,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에 휘둘릴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 협상 과정에서 투자 계획과 안보상 우려 사항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와 치밀하게 조율을 진행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로가 가동 중단된 생산 거점의 재편이라는 소규모 사안에서도 미국 정부로부터 이견이 제기된 것이다. 닛케이는 "미국 정부와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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