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패와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동남아시아·남아시아 Z세대를 중심으로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네팔, 동티모르, 필리핀까지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며 정권 교체와 내각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0년 중동 '아랍의 봄'이 15년 만에 아시아에서 재현될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지난달 발생한 인도네시아 시위가 첫 신호탄이 됐다. 인도네시아 하원 의원 580명이 월 최저임금(540만 루피아)의 10배에 달하는 월 5000만 루피아(약 430만원)의 주택 수당을 챙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가 폭발했다.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 방화와 약탈이 이어졌고, 경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오토바이 배달 기사를 포함해 10명이 숨지고 20명이 실종됐다. 이에 정부는 국회의원 특혜를 폐지하고 내각을 개편했다.
젊은 층은 정부의 조치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반부패 운동을 억누르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그간 고위층 자녀 '네포 키즈'가 소셜미디어에 호화로운 생활을 자랑했고 이에 대한 청년층의 반발심이 커지고 있었다.
네팔 인구 3000만 명 중 20% 이상이 빈곤층이고 1인당 연소득은 1400달러(약 194만원)로 남아시아 최저 수준이다. 청년이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워 매일 2000명 이상의 청년이 해외로 떠난다는 통계도 있다.
시위는 폭동으로 비화해 부총리와 장관이 거리에서 폭행 당했고, 대통령 관저와 총리 자택이 불탔다. 이틀 간 시위로 인해 72명이 사망하고, 2000명 넘게 부상을 당했다.
동티모르에서도 의회가 국회의원 65명에게 도요타의 새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지급하기 위해 예산 420만 달러(약 58억 2000만원)를 편성하자 2000여 명의 대학생들이 반발해 시위를 펼쳤다.
시위는 수도 딜리에서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이어지면서 의회는 예산 편성을 철회하고 종신 연금 폐지안까지 발표했다.
필리핀에서는 홍수 예방 사업을 둘러싼 대규모 부패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최근 3년간 9800건 넘는 사업에 13조 원대 예산이 투입됐지만 최소 1조 원대의 뇌물 수수 의혹이 불거졌다.
시위의 촉발 요인은 제각각이지만 공통된 배경은 성장의 과실을 독점한 엘리트와 청년층의 좌절이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청년실업률(15∼24세)은 스리랑카 22.3%, 네팔 20.8%, 인도네시아 13.1%로 세계 평균(13.5%)과 비슷하거나 높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들 국가가 모두 뿌리 깊은 정치 계급, 높은 청년 실업률, 심각한 부패라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또 방글라데시 평화안보연구소 샤프카트 무니르 연구원은 FT에 "이 지역(아시아)에서 Z세대가 정치 지도자들에게 '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네팔 정치 평론가인 아미시 라즈 물미도 "국가는 여전히 일반 시민들에게 무관심했고, 총리와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에게 도전할 누군가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마치 왕처럼 행동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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