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쩔 수가 없다' 손예진 "모호했던 '미리'役, 감독님께 '명분' 부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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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그 영화 왜 했어?"라는 말만은 듣고 싶지 않다는 배우 손예진의 바람은 곧 박찬욱 감독에게 무게 있는 약속이 되었다. 박 감독은 "그날부터 각본을 더 재밌게 고치며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회상한다. 

7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손예진은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위기일수록 단단해지는 인물 '미리'를 맡았다. 남편의 실직에도 질책 대신 위로를 건네고, 가족의 중심이 되어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아내. 유쾌하고 강단 있는 성격 뒤에 감지되는 섬세한 불안을 손예진은 특유의 현실적인 호흡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멜로 퀸'을 넘어, 프로페셔널한 배우로서의 저력을 다시 증명하는 순간이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분량을 떠나서 '미리'가 가지고 있는 게 모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팩트라고 할까요? 제가 느끼기에 모호하다는 인상이었어요. '이걸 내가 꼭 해야 할까?'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이 없겠다'는 생각이 교차했던 거예요."

손예진은 '미리'를 처음 마주했을 당시의 솔직한 불안을 털어놨다. 단순히 비중이 크고 작은 문제가 아니라, 인물이 가진 힘과 존재감을 냉철하게 따져본 흔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을 꼭 해보고 싶어서 참여하게 된 거죠. 감독님께 '내가 이 작품을 하는 명분을 만들어주었으면' 하고 요청드렸던 거였고요. 복귀작이기도 하고 내가 이 캐릭터를 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마음도 컸던 거죠. 감독님은 입 바른 소릴 못 해요. '이 캐릭터는 조연이고 만수가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미리는 중요한 캐릭터'라고 하시면서 제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신 거죠. 미리의 과거도 만들고 조금 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인물로 가게 해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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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님은 배우들이 누구나 한 번쯤 함께하고 싶어 하는 감독이잖아요. 당시 저는 육아 휴직 중이었고, 어떤 작품으로 복귀를 하게 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수동적인 면이 있잖아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액션이나 장르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좋은 작품을 계속하고 싶지만, 예전 같지 않을 수도 있고, 예전만큼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만의 것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고, 감독님이 저를 불러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손예진은 복귀작을 준비하던 당시의 불안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불안은 자신을 다시 무대 앞으로 이끈 원동력이기도 했다.

"작업을 시작했을 때 따지고 보면 길지 않은 공백이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았어요. 현장에 다시 나가보니 '아, 이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구나' 싶더라고요. 엄마로서 보내는 시간은 행복하기도 했지만 온통 신경 쓸 일 투성이었고, 온전히 꺼내놓는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현장에서 연기를 하는 게 저에게는 리프레시였어요. 긴장감, 몰입할 때의 희열, 차 안에서 조용히 고요를 즐기는 순간까지 다 소중했죠."

그는 배우로서의 행복과 엄마로서의 고군분투를 동시에 마주했다. 두 해 동안의 경험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다시 연기에 에너지를 200퍼센트 쏟을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이병헌 선배님과 대부분 호흡을 맞췄는데, 그 자체가 큰 공부였어요. 다른 선배님들의 캐릭터 역시 다 살아 있었고요. 그래서 믿음이 있었어요. 이건 근사한 작품이 되겠구나, 하고요.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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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촬영 첫 대사가 '와, 당신 좋아하나 봐. 비싼 장어를 다 보내고'였는데요. 짧은 대사였지만 감독님이 어미 처리, 장단음 하나까지 꼼꼼하게 지적하시더라고요. 사실 그 순간 '아, 이제 죽었다' 싶었어요. 몇 년 만의 복귀라 긴장도 컸는데, 대사를 작게 말하라, 말투를 다듬어라 하는 디렉션이 이어지니까 쉽지 않았죠."

손예진은 첫날부터 박찬욱 감독의 디테일에 압도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곧 그 디테일이 연기를 새롭게 체득하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겪어보니까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제 해석을 감독님이 받아들여줬을 때 행복했고, 정말 학생이 된 기분이었어요. 병헌 선배님도 디테일하게 디렉팅을 받으면 즉석에서 요리조리 바꿔내는데, 그걸 보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배우고 성장했죠. 익숙해지고 나서는 미션 클리어했을 때의 행복감도 느꼈어요."

손예진은 '미리'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만수와의 과거를 오래 들여다봤다고 했다. 미리는 한때 싱글맘이었고, 그런 그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온 청년 만수는 누구보다 아들을 아끼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술에 취했을 때의 실수와 폭력은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았다. 

손예진은 "9년간 술을 끊는 건 쉽지 않은데, 만수는 해냈잖아요. 미리는 그걸 존중했고, 아빠로서 사랑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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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그렇기에 그녀는 만수의 극단적인 선택과 폭력조차 '무섭다'보다 '안타깝다'는 감정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결과적으로는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미리 입장에서는 차라리 애잔했어요. 아이를 위해 늘 독립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주입해온 게 만수에게는 압박이었을 수도 있죠. 그게 결국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가슴이 아팠어요."

손예진은 결론 대신 질문을 남겼다. "감독님은 저걸 알고도 잘 살 수 있었을까?라고 물으셨는데,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덮어두고 살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끝내 균열이 드러났을 수도 있고요."

손예진은 특히 아들 '시원'을 안심시키는 장면에서 '엄마'로서의 감정을 깊이 이입했다고 했다. "아이에게 '엄마가 땅 파봤어'라고 말할 때, 그건 대사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아이를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사실은 두려움이 있지만, '뭐가 있긴 있더라' 같은 흔들림을 보이고 싶지 않았죠. 연기자들은 보통 떨면서 감추거나, 웃으며 감추거나 여러 버전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장면만큼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확신으로 하고 싶었어요. 엄마가 되어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택이었을 거예요."

핸드폰을 파묻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손예진은 그것이 '아내'의 감정보다 '엄마'의 본능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남편의 잘못을 덮어준다는 윤리적 문제보다, 아이의 허물을 끝까지 안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거예요. 분노보다 안도감에 가까웠죠. '안 돌려줘도 되나' 하고 만수를 바라보는 미리의 표정은 결국 엄마여서 할 수 있었던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손예진은 엄마가 된 이후 연기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요. 그냥 느낌이 다른 거죠. 엄마가 되더니 깊어졌다, 성숙해졌다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사실 표면적으로 '이래서 달라졌다'라고 설명하기는 애매해요"라며 웃었다.

이어 "시야가 넓어진 건 분명해요. 일상의 책임감이 늘어나면서 연기도 달라진 것 같아요. 배우로서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은 여전하지만, 그게 때로는 저를 갉아먹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육아를 하면서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어요. 아이가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잘 지내는 것, 그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게 됐죠.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소중함도 더 커지고, 저 자신에게 조금은 여유를 주게 된 것 같아요. 연기적으로도 그런 변화가 자연스레 묻어나지 않나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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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손예진은 이번 작품이 스크린 복귀작이라는 사실조차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7년 만에 스크린에 서는 줄 몰랐어요. 마지막이 '협상'이더라고요. 사실 작품을 아예 쉰 건 아니니까 못 느끼고 있었죠. 그런데 배우로서는 극장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요. 불이 꺼지고 두 시간 동안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이 우리에겐 소중한 추억이잖아요. 그런데 관객들이 극장을 덜 찾으니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것도, 투자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현장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죠."

그는 차기작으로 OTT 시리즈 두 편을 준비 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캔들'과 '버라이어티'로 파격적인 변신에 나설 예정이다.

"'스캔들' 위험한 관계 속 인물이에요. 레이어와 표면, 심리까지 복합적인 면이 있어서 힘들었지만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버라이어티'의 경우는 외모부터 파격적으로 변신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입니다. 곧 촬영에 들어가는데 큰일 났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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