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얼굴' 연상호 감독 "손익분기점? 마음의 빚 갚으려면 '천만 관객' 들어야"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대작의 규모를 벗어나 가장 작은 자리에서 시작했다. '부산행' '반도'로 한국 상업영화의 외연을 확장해온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불과 2억 원 예산으로 만든 영화 '얼굴'을 들고 극장에 돌아왔다. 스태프들이 최저임금을 감수하고 배우 박정민이 노개런티로 합류할 만큼, 현장은 '실험'과 '연대'의 자리였다. 감독에게도 영화계에도 낯선 도전이 된 이 작품은, 그가 데뷔작으로 발표했던 그래픽 노블을 스크린에 옮겨온 결과물이다.

"'계시록' 프로듀서에게 '얼굴' 이야기를 꺼냈어요. '작은 규모의 영화를 하고 싶은데, 이거 만들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니 프로듀서가 '하면 하죠'라는 거예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예산안을 짜기 시작했고, 바로 박정민에게 연락해서 출연 제안을 했어요. 한밤 중이었는데도 바로 출연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하루이틀 사이 결정되었고 '다같이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죠."

얼굴의 원작 만화는 2018년에 출간됐다. 하지만 영화로 옮겨오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제작은 수차례 멈추고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했다.

"명확히 말하면 대본을 들고 투자·배급사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거절이었죠. 규모를 작게 제안한 것도 아니었고, 늘 '이런 영화는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했어요. '마이너하다', '개인적인 만족은 가능하겠지만 대중이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선이었죠. 그래서 저도 어느 정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영화를 꼭 투자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큰 돈을 댈 수는 없지만, 예전처럼 영화 동아리 하듯이 알음알음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응원을 많이 해줬고, 거기에서 힘을 받아 다시 제작을 시작하게 됐죠."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얼굴'은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11일 개봉 이후 빠르게 관객을 끌어모으며 16일 오전 기준 누적 35만6734명을 기록,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해외와 국내를 오가며 영화의 반응을 직접 확인한 연상호 감독은 그 과정이 정신없으면서도 특별했다고 말했다.

"토론토 영화제에서 돌아오니까 한국에서는 이미 개봉 이틀 차였어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부터 무대 인사를 시작했죠. 정신이 없었지만 관객들이 어떻게 영화를 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만에 극장에서 무대 인사를 하면서 정말 실감했어요. 사실 가끔은 관이 다 안 찰 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매번 객석이 꽉 채워져 있었거든요. 저도, 배우들도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좋아했어요. '맞아, 이게 극장 개봉의 맛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작품을 완성하고 해외와 국내에서 연달아 성과를 확인한 지금, 연상호 감독이 바라는 것은 단순한 흥행 이상의 의미였다.

"이제는 욕심을 내자면 이 영화가 흥행했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돼 있죠. 기존 한국 투자·배급사들도 돌파 지점이 필요하잖아요. 배급이나 투자라는 게 결국 영화의 사이즈가 아니라 콘텐츠의 힘에 달려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과라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가 그 방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번 작품에는 연상호 감독의 초심이 짙게 배어 있다. 애니메이션 '사이비', '돼지의 왕'에서 보여줬던 인간 내면의 어둠과 본질을 탐구하는 시선이 다시 드러난다. 상업영화의 궤적을 이어오던 그가, 이번에는 작가로서의 원점에 가까운 질문으로 돌아왔다.

"전작들 인터뷰에서도 늘 밝혔지만, 저는 작가로서 대중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는 대중성을 신경 쓰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대로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잘 모르겠어요. 분위기가 좋았는지, 제가 만들고 싶은 대로 했는데도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게도 대중성이 있나?' 싶기도 했어요. 사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같은 작품은 잘 안됐었거든요. 물론 오해는 하면 안 되고,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얼굴 스틸컷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 스틸컷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얼굴'이 완성되기까지는 비용 절감의 과정이 필수였다. 제작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는 막내 스태프의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나누어 지급했고, 각 팀 감독급 스태프들 역시 더 받아야 하는 몫을 양보하며 합류했다. 만족스러운 조건은 아니었지만, 작품을 향한 동의와 의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손익분기는 이미 맞췄다고 하지만, 사실 마음의 빚이 남아요. 너무 약소하다 보니까 수치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연상호 감독은 특히 출연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 배우 박정민을 언급했다. 

"당연히 약소했죠. 제가 '받아도 안 받은 것처럼 해줄게'라고 했는데 굳이 안 받겠다고 했어요. 박정민 배우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컸던 것 같아요. 홍보도 그렇고, 유튜브 콘텐츠까지 직접 나서고, 홍보팀에 알리지 않고 움직이는 경우도 많았죠. 정말 애를 많이 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제 마음의 빚이 더 커지는 거예요. 정민 씨도 본인이 어떻게 계약했는지 잘 모르더라고요."

그는 "마음의 빚을 청산하려면 천만 관객이 들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덕분에 마음의 빚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웃었다.

그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건 임영규라는 인물의 내면을 관객에게 어떻게 '깊이 안내할 것인가'였다. "임영규의 뒤틀린 내면 속으로 관객을 계속 데려가야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그걸 설득하려면 먼저 이해시켜야 하잖아요. 마지막에 임영규가 보이는 심리를 일종의 항변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챌린지였죠. 그런데 막상 영화를 내놓고 보니 그 부분을 이해해 주시는 관객이 많아서 놀랐어요. 기묘한 감정이지만 어쩌면 보편적인 감정일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제가 늘 헷갈리는 '대중성'이기도 해요."

원작 만화에는 챕터 구분이 없고 인터뷰 형식의 르포 구조를 띠고 있었다. 연상호 감독은 바로 그 형식미에서 영화적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했다.

"제가 예능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형식적인 부분에 많이 주목하는 편인데, 어느 날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데 너무 흥미롭게 빨려들어가더라고요. 제작비가 크지 않아도 설명과 재연, 내레이션이 결합하면 충분히 몰입감이 생긴다는 걸 느꼈어요. 영화만의 형식이 꼭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우리도 이런 르포와 극영화의 중간 형태라면 예산을 줄이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게 얼굴을 영화로 만들게 된 최초의 동기였어요."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으로 출발한 감독이다.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는 그가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와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을 위해서도 그의 복귀를 기대하는 시선은 적지 않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진 않아요. 사실 얼굴을 준비할 때도 '애니메이션으로 해볼까' 고민이 있었죠. 하지만 이미 서울역까지 3편을 했으니까, 이번에는 굳이 또 애니로 가기보다 실사로 도전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만약 다시 애니메이션을 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상업적인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다면 확실히 성과를 내고 싶죠. 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연상호 감독은 "영화든 유튜브든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하는 게 중요하다"며 끊임없이 만들고 부딪히는 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차기작은 영화 '군체'다. 다시 좀비 장르지만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 

"좀비 영화는 여전히 재밌는 소재라고 생각해요. 이번엔 집단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기존의 반도 같은 작품과는 다른 공포를 담으려고 해요. 인공지능을 떠올려 보세요. 너무 똑똑해서 인간보다 완벽할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하잖아요. 그때 느껴지는 불안과 공포, 이번 작품은 그런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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