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금융권이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대규모 금융지원 체계를 가동하지만, 기업의 자구노력과 구체적인 사업재편 계획 없이는 자금 지원이 없을 것이라는 원칙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석유화학에 이어 구조조정을 진행할 철강업계에도 미리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은행연합회, 17개 시중은행 및 주요 정책금융기관은 30일 '산업 구조혁신 지원 금융권 협약식'을 열고 석유화학 산업의 사업재편과 금융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협약은 지난달 21일 금융권 간담회 이후 한 달여 만에 성사된 것으로, 석유화학을 비롯한 주력산업의 선제적 구조혁신을 지원하는 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아직 석화업계가 제시한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권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시장에서 석화산업에 대한 의구심을 걷어내고, 기업의 의지와 실행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그림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협약에 따른 금융지원이 △정상기업 △기업·대주주의 철저한 자구노력 △수익성 개선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추진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구조조정 기업들은 설비 통폐합 등을 통해 나프타분해시설(NCC) 총 에틸렌 생산량을 최대 25%로 감축하는 등의 사업재편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금융지원의 선결 조건을 명확히 한 것은 향후 철강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같은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철강산업 재편 방안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금융권은 생산구조 전환과 시설투자, 불공정 수입재 대응 등 수익성 개선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융지원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석유화학과 철강과 같은 핵심 제조산업이 무너지면 은행권도 피해를 입기 때문에 선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성 감소와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부담을 지면서까지 금융지원을 하는 만큼 업권의 유의미한 변화 없이는 지원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편 석유화학 금융지원은 기업이 주채권은행에 구조혁신 지원을 신청하면 주채권은행은 채권은행들을 모아 자율협의회를 소집하고 절차를 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율협의회는 외부 공동실사를 통해 사업재편계획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필요한 금융지원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금융지원은 현재의 금융조건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만기연장, 이자유예, 이자율 조정, 추가 담보취득 제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필요 시 신규 자금 투입도 이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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