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쌀 소비와 K-명주, 세계로 향하는 우리 술의 길

최명철
[사진=최명철 국립식량과학원 식품자원개발부장]
쌀은 오랜 세월 우리 밥상을 지켜온 곡물이자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쌀의 위상도 달라졌다. 1970년대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30㎏을 넘었으나 2024년에는 55.8㎏ 수준으로 반세기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 빵과 면, 간편식이 식탁을 채우면서 쌀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고 농업과 쌀 산업 전반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렇다면 쌀 산업의 미래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해답은 가까이에 있다. 바로 '전통주'다. 쌀은 술잔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난다. 막걸리, 약주, 증류식 소주 같은 전통주에는 쌀을 원료로 한 깊은 맛과 향, 그리고 발효문화가 깃들어 있다. 최근 혼술·홈술 문화 확산과 함께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쌀 소비 회복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전통주가 지역 특산주 수준에 머물면 성장에 제약이 따른다. 이제는 '명주(名酒)'로 거듭나야 한다. 명주는 단지 술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브랜드 가치와 희소성, 지역성과 전통성을 바탕으로 국제 경쟁력을 갖춘 프리미엄 주류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차별화된 원료 선정과 엄격한 제조 공정, 과학적 품질관리 그리고 술에 담긴 문화적 스토리까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세계 각국은 이미 자국 전통주를 명주로 키우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와인의 토양과 기후를 세밀히 구분하고 '지리적 표시제(AOC)'를 도입해 품질을 제도적으로 보증했다. 영국은 '스카치 위스키법'을 통해 원료, 증류 방식, 숙성 기간 등을 엄격히 규정해 '스카치'라는 이름 자체가 프리미엄을 상징하도록 만들었다. 일본은 사케를 국주로 지정하고 품종, 도정 비율, 효모 번호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해 최근 10년간 수출을 4배 가까이 늘렸다.
 
이들 사례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원료, 공정, 품질, 스토리를 과학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만 국제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K-명주를 위한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원료의 차별성 확보다. 국산 양조용 쌀 등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지역 농산물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둘째, 발효 공정의 과학화다. 토착 발효 미생물을 종균화해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생산비 절감에 도움이 되는 발효기술을 보급해야 한다. 셋째, 품질 평가 체계 구축이다. 향미 지표와 등급제를 마련해 소비자가 믿고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스토리와 브랜드 강화다. 특정 지역 쌀과 미생물, 오래된 양조장 이야기가 술 한 잔에 담길 때 그 술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문화가 된다.
 
이러한 조건이 갖춰진다면 전통주는 단순한 기호품에 그치지 않고 농업과 식품산업은 물론 관광·외식 분야와도 연계되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산업 간 시너지를 통해 더 큰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나아가 K-푸드와 K-컬처를 잇는 한국형 명주로 발전할 수 있다.
 
결국 전통주의 명주화는 쌀 소비 확대는 물론 한국 농업과 식문화 국가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전략이다. 밥상에서 시작된 쌀이 술잔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농부의 땀과 장인의 정성, 한국인의 이야기가 한 잔의 술에 담겨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한국 명주와 쌀 산업의 새로운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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