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AI 황푸군단'의 귀환 … 휴머노이드 7룡이 깨어났다

  • 실험실서 산업 현장으로…로봇에라 탄생

  • 중국식 산학연 생태계…4차산업 혁신 엔진

  • 혁신 통한 경제성장…중국식 성장 방정식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로봇에라 전시관 싱둥 스타1 Q5 L7 등 휴머노이드 로봇과 엑스핸드1 등 주요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로봇에라 전시관. 싱둥 스타1, Q5, L7 등 휴머노이드 로봇과 엑스핸드1 등 주요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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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⑨


기자가 21일 방문한 중국 베이징 소재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로봇에라(중국명·星動紀元, 싱둥지위안) 기업 전시관. 로봇에라는 기업가치 10억 위안(약 2010억원)이 넘는 중국 대표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중 하나다. 올 초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5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기자회견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날 전시관 한쪽에 마련된 실험실에서는 로봇에라의 최신 휴머노이드 로봇 'L7'이 한창 물류 시나리오 훈련 중에 있었다. 로봇에라에 따르면 L7은 전신에 55의 자유도를 지원해 섬세하고 유연한 움직임이 가능하고, 물류센터 및 공장에서 분류·스캔과 나사 조이기 등 정밀 작업 수행도 가능하다.

연구원의 조작에 따라 L7 로봇이 선반 위에 올려진 분홍색, 노란색, 파란색 소포를 하나씩 차례로 손으로 집어올려 QR코드를 스캔해 분류함에 집어넣는다. 로봇에라 관계자는 "지금은 사람이 짜준 시나리오대로 로봇이 움직이지만, 몇개월간 반복 훈련을 거치면 로봇 스스로 판단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에라가 자체 개발한 로봇용 AI 모델, 'ERA-42' 덕분이다. 'ERA-42'는 사람의 구두 명령을 알아듣고 상황을 인지해 필요한 동작을 스스로 판단해서 수행하는 대규모 시각-언어(Vision-Language Action, VLA) 모델이다. VLA 모델을 통해 시나리오별 훈련을 거친 로봇들은 실험실에서 나와 물류창고 같은 산업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칭화대 실험실서 산업 현장으로…로봇에라 탄생

2023년 8월 설립된 로봇에라는 칭화대학교 교차정보연구원(IIIS)에서 탄생한 중국 대표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IIIS는 컴퓨터공학, AI, 양자정보 등 분야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학문 영역을 연구하는 곳으로, 중국 'AI 대부'로 불리는 야오치즈 원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칭화대 IIIS의 조교수로 재임 중인 창업자 천젠위가 실험실서 연구한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상용화를 위해 직접 차린 회사가 로봇에라다. 전체 직원 200명 중 90%가 연구개발(R&D) 인력이고, 칭화대 출신만 30~40%에 달한다.

중국 명문 칭화대학교가 직접 지분 투자한 유일한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로봇에라가 입주한 곳은 칭화대 산하 과학기술 파크라 불리는 칭화과학기술원(칭화과기원, TusPark)이다.
중국 명문 칭화대 사진배인선 기자
중국 명문 칭화대 산하 과학기술 파크라 불리는 칭화과기원(TusPark) 전경.[사진=배인선 기자]

로봇에라는 중국 특유 '산학연(産學硏)' 모델 성공 방정식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중국은 정부 주도 아래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지금 이러한 양상은 더 뚜렷해졌다.

덕분에 연구 성과가 실험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산업화로 전환할 수 있다. 올 초 전 세계에 인공지능(AI) 돌풍을 일으킨 중국 항저우 소재 스타트업 딥시크도 저장대를 중심으로 활성화된 산학 연계 AI 생태계에서 배출됐다.

최근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폭발적 성장도 이러한 중국 특색 산학연 생태계 모델이 뒷받침됐다. 그리고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실' 칭화대가 그 중심에 있다.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의 선두대학인 칭화대는 2002년 이미 자유도 32의 휴머노이드 로봇 THBIP-I(Tsinghua Biped Humanoid Robot, 칭화 이족보행 인간형 로봇)를 개발했다. THBIP-I는 중국 최초의 완전 휴머노이드 구조를 갖춘 자율 로봇 시스템이다. 칭화대는 2015년에는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선두기업인 유비테크와 알고리즘 선행 연구에 중점을 둔 베이징연구소도 공동 설립해 로봇 기술의 상용화에 힘썼다.

사실상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의 '황푸 사관학교'로, 이곳에서 육성된 인재들이 수많은 스타트업 창업 신화를 썼다. 중국 매체 TMT포스트에 따르면 2025년 8월까지 칭화대 출신이 창업하거나 핵심 인력이 칭화대 출신인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만 약 20곳으로, 이들이 조달한 투자금은 총 50억 위안이 넘는다.

로봇에라를 비롯해 싱하이투(星海圖, 갤럭시아 AI), 첸쉰즈넝(千尋智能, 스피릿AI), 쑹옌둥리(松延動力), 자쑤진화(加速進化, 부스터로보틱스), 인허퉁융(銀河通用, 갤봇), 링츠팡(零次方, 제리스)을 '칭화대가 낳은 휴머노이드 로봇계 일곱 마리 작은 용'이라고도 부른다.
중국식 산학연 생태계…4차산업 혁신 엔진

특히 칭화과기원은 칭화대가 1994년에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구축한 산학연 클러스터다. 이곳에서는 학생과 교수의 창업을 돕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운영했다. '연구실 기술 → 창업 → 산업화 → 정부·자본 투자'로 이어지는 폐쇄루프형 혁신 시스템이 칭화대의 산학연 협력의 경쟁력으로, 중국 혁신 창업 생태계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칭화과기원은 현재 베이징뿐만 아니라 시안·주하이·선전 등지에도 분원을 만들어 창업 생태계 모델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 주도 아래 칭화과기원을 모방한 저장과기원(2001년), 베이징대과기원(2000년), 푸단대과기원(2000년) 등 국가급 대학 과기원도 줄줄이 탄생했다. 이곳서 배양된 인재와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뿐만 아니라 AI·반도체 등 첨단 분야의 중국 국가 혁신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도 중국 4차산업 혁신 생태계 발전에 한몫 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예로 들어보자. 중국은 이미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하며 10대 전략산업에 로봇을 포함시켰고, 2023년 공업정보화부를 비롯한 17개 부처가 공동으로 내놓은 '로봇+(플러스) 응용 행동 계획'으로 로봇 전후방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중국의 향후 2026~2030년 5년 경제사회 정책 방향을 담은 15차 5개년 계획(이하 15차 계획)에도 휴머노이드 로봇은 양자기술·바이오·수소 및 핵융합에너지·뇌컴퓨터 인터페이스·6G와 함께 6대 신흥 미래산업으로 포함돼 신경제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될 전망이다.

이처럼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정책과 방향을 제시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면, 기업들은 기술 혁신과 상용화에 주력하고, 돈과 인재도 자연스럽게 기업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 내 로봇 기업은 무려 45만1700곳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들의 투자 유치 등 자금 조달 건수가 총 108건으로, 한화 기준 총 3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고 중국 국영중앙(CC)TV는 집계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로봇 기업 수는 고작 중국의 100분의 1, 4521곳에 불과한 것과 비교된다.
혁신 통한 경제성장…중국식 성장 방정식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 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핵심 키워드다. 수상자인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필립 아기옹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피터 하윗 미국 브라운대 교수 3명(이하 JPP)은 특히 '혁신은 제도와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사회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해가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정부가 혁신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설계해 대기업 중심의 연구개발 지원을 넘어, 대학·중소기업·지역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실험하고 협력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술 발전에 있어서 가장 큰 진전은 정부·대학·기업간 협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하윗)",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는 혁신 문화와 시스템은 '과학기술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부'를 필요로 한다(모키어)". 올해 노벨 경제수상학자들의 발언이다. 중국은 이미 예전부터 4차산업 혁명 현장에서 실행에 옮겨온 것이기도 하다.

이달 열린 중국 공산당 수뇌부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중국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는 중국이 과학기술 혁신을 중국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을 것임을 밝혔다.

왕원 중국인민대 충양금융학원장은 24일 중국 기자협회가 마련한 한 행사에서 "4중전회에서 논의된 15차 계획은 과학기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며 "향후 5년간 중국의 과기 자립자강(自立自强)은 더 강해져 전 세계 4차산업 혁명에서 선두를 달릴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중국의 지난 12차 계획, 13차 계획의 실제 이행률은 각각 96.4%, 93%에 달했다. 왕 원장은 "14차 계획도 대부분 실현하거나 목표치를 넘어서는 등 완성률이 매우 높다"며 15차 계획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이재명 대통령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혁신경제' 기치 아래 AI 3대 강국 도약, 과학기술 인재 육성과 같은 국정과제를 내놓으며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국가는 흥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는 망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계획에만 그쳐선 안 된다. 우리도 중국처럼 거국적이고 지속적인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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