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전략학]
한국 경주에서 열린 제25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가 ‘경주 선언’을 발표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실 이번 회의는 APEC 자체보다는 이를 계기로 이뤄지는 양자 회담, 특히 첨예한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중국은 지난 10월 9일 기존의 수세적인 대미 대응에서 벗어나 당연히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가의 보도인 희토류 수출통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의 희토류 성분이나 중국의 정제·제련 기술이 들어간 희토류의 수출과 이를 이용한 제품의 제3국 제공 등에 대해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상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천명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기술 통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자, 미국의 대중 수출 1위인 미국산 대두 수입 금지 등 트럼프 행정부의 폐부를 찌르는 핀셋 대응을 통해 APEC 계기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승부수를 던졌다.
애초부터 다자 시스템을 배척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APEC 본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은 채 동남아 순방과 일본 방문의 성과를 가지고 한국에서 중국과의 담판을 통해 미국의 ‘승리’를 관철하려는 거래적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공격에 대해 다른 교역국들과는 달리 저항 의지는 물론 능력도 갖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한다. 유일하게 미국의 공세에 맞대응을 하면서, 전혀 기존의 미국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미국의 대체자로서 자유무역 질서의 새로운 수호자이며 리더임을 자처하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떠난 APEC 본회의는 시진핑의 중국 무대가 됐음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반도체 관련 수출통제와 중국의 펜타닐 통제 비협조에 대해 20% 관세를 부과하고, 선박 입항 수수료를 시행하고 있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및 미국산 대두 구매 금지, 선박 입항 수수료 대응 부과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희토류 추가 통제에 트럼프 대통령은 100% 추가 관세 부과를 천명했고, 양자 담판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11월 1일부터 추가 관세가 부과되는 상황이었다. 사실 양국은 고위급 실무 협상을 계속해왔고, 지난 트럼프 대통령의 아세안 순방을 계기로 양국 정상이 무승부를 이룰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처럼 결과적으로 양 정상은 확전을 자제하자는 휴전을 택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무역 회담에서 미국은 제재 대상 중국 기업의 자회사를 통한 민감 기술 확보를 차단하는 조치를 1년 유예하기로 하고, 중국도 희토류·설비·기술 수출 통제 강화 조치와 입항 수수료도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누가 승자인지에 관심이 많지만 양 정상의 속내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이번 자리는 무승부, 즉 비기러 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정상회담 직전 대만 주변 해역에서 폭격기 훈련을 진행하고, 무력 사용 포기를 약속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양측의 최대 민감 사안인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언급을 피했다.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 대해서도 미국은 말을 아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양국 정상회담은 기본적으로는 즉각적인 무역 긴장 완화를 통해 세계 경제에 안도감을 주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양자 갈등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표면적 ‘거래’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미국이 주장하는 갈등의 근본 원인인 과잉 생산이나 과도한 불법 보조금, 불공정 무역 관행을 통한 무역 질서 파괴 같은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희토류 통제 1년 유예와 중국의 대두 수입 재개를 맞교환한 거래다. 또, 향후 1년마다 희토류 통제를 협의를 통해 연장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국의 칼자루는 존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민을 의식해야 하는 미국의 대중 카드가 상대적으로 옹색해 보인다.
이 때문에 이번 휴전도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회담으로 양국 갈등이 일시적으로 완화될 수는 있지만, 어느 한쪽이 합의를 위반했다고 해석될 만한 조치가 나타나면 합의가 쉽게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과의 맞불을 통해 비교적 대등하게 양보를 주고받은 국가인 중국의 대응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유효하며, 미국이 새로운 제재를 가하기 전에 중국의 존재를 분명히 의식하게 하는 성과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합의가 '1년 단위'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에 향후 미·중 관계의 지속적인 협상은 불가피하다.
이는 당연히 국제 시장과 국제 질서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고민은 또 커진다. 완전한 타결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일단 한·미 관세 협상이 방향을 잡은 가운데 실용 외교 전개인 또 다른 축인 중국과 안정적 관계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APEC 의장국으로서 공동 선언문도 이끌어 냈고, 한·미, 한·중 회담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본격적인 협상과 실용 외교의 전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국가적 대계 수립과 실용 외교의 실천적 전개에 전략적 중지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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