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3명의 수상 공로는 신기술을 통한 지속가능 성장이었다. 기술혁신과 경제 성장의 연관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이론을 규명한 공로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경제학자가 있다. 조지프 슘페터다. 저성장이 뉴노멀이 돼버린 성장 암흑기에 혁신의 아이콘인 슘페터가 다시 소환된 셈이다.
슘페터의 천재적 용어나 명문장은 이해에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산업적 돌연변이라고 일컬은 창조적 파괴 과정도 단순히 그 현상만 머릿속에 그려서는 안된다. 슘페터는 그 과정의 절대적 조건으로 끊임없이(incessantly) 몰아치는 돌풍과정(perennial gale)을 들었다. 한두 번의 도끼질로는 일이 절대 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 할수록 자본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가는데 그 가운데 지식인의 역할이 크다고 말한 슘페터의 예언도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이때 슘페터가 지식인으로 예시한 직업군이 흥미롭다.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 외에 하나의 직업군을 추가했다. 입과 붓으로 언어의 힘을 휘두르고, 자신의 업무에 대해 직접 책임을 안 지고, 자신의 업무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며, 늘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훼방꾼이자 선무당인 직업. 과연 이 직업은 뭘까. 답은 저널리스트다. 요즘 말로 기자들이다.
이런 경제발전론자 슘페터가 금융에도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요즘 주변에서 자주 거론되는 생산적 금융론의 원조도 슘페터다. 경제 성장과 발전에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데 슘페터의 생산적 금융론에는 시작점이 따로 있다. 바로 ‘생산적 이자(productive interest)’라는 개념이다. 금융 투자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돼야 하고, 그 성장에서 파생된 수익이 곧 생산적 이자라는 것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생산적 금융 또한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경제학자들은 화폐에 이자가 붙는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였다. “너희는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꾸어주어서는 안된다”는 구약 성경 구절 때문이기도 했을 듯하다. 문제의 성경 구절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흔히 이렇게 설명한다. 경제성장률이 사실상 제로(0) 퍼센트였을 고대사회에선 대부행위가 착취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죄악시 됐을 것이라고. 슘페터도 “정태적 경제(경제성장이 없는 정체 상태)는 생산적 이자와 무관하다”고 못박고 있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이렇다. 성장이 있는 곳에만 이자(생산적 이자)가 설 자리가 있다고.
이재명 정부가 금융을 강조하고 나온 것에 대해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정교한 디자인이다. 이재명 정부의 금융론은 3개의 화살로 구성돼 있다. 서민금융과 생산적 금융(간접 금융시장), 그리고 상법 개정 등으로 포장돼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자본시장(직접 금융시장) 혁신 등이다. 금융론만으로 3개의 화살을 구축했으니 일본 전 총리 아베의 3개 화살론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
이 가운데 특히 이 대통령의 생산적 금융론은 한국 금융의 허점을 제대로 짚었다. 제로 성장에 고금리가 말이 되는가. 그런데도 금융권만 매년 조 단위 영업이익에 성과급 잔치다. 저성장 책임론에 맞닿은 대통령의 뼈 때리는 진단 때문일까. 금융지주들이 하나같이 생산적 금융을 외치고 있다. 예컨대 우리금융은 2030년까지 5년여 동안 80조원(같은 기간 전체 대출 자산의 3~4% 추정)을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에 넣겠다고 발표했고 다른 금융지주들도 조직 신설 등 비슷한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 계획들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으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에 기여해야 하고, 적당한 수익의 이자가 뒤따라야 한다(그래야 지속 가능하다). 경제성장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주택담보 가계대출을 생산적 금융이라고 부를 순 없다. 전체 대출 패턴 자체를 바꾸지 않고 일부 찔끔 떼어 이를 이름 모를 신기술 분야에 대출한다고 생산적 금융이 아니다. 무늬뿐인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금쪽 진단에 금융권도 이번에는 똑바로 대응했으면 싶다.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 대출부터 줄여보라. 그리고 대출 심사 기능을 대폭 강화하라. 그래서 지주 전체 수익의 태반을 생산적 이자로 탈바꿈시켜 보라. 그래야 진짜 생산적 금융이다. 여기에 상법 개정 등을 통한 직접 금융시장의 획기적 혁신과 따뜻한 서민금융의 정착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실물경제가 꿈틀대고 결국 한국 경제가 다시 비상할 것이다. 이 밑바닥에 공통으로 깔려있는 기초가 바로 생산적 이자 개념이다. 이재명 정부 ‘JM노믹스 금융론’의 성공 콘셉트이기도 하다.
그럼 한국인에겐 3개의 금융 화살을 제대로 쏠 금융 DNA(유전자 정보)가 몸속에 내재해 있을까. 이재명 정부 3개의 금융 화살이 성공하기 위한 마지막 필요조건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한국인에겐 그런 DNA가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경북 안동에서 접한 퇴계 가문의 가훈에서 그 단초를 찾았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견선여기출(見善如己出), 견악여기병(見惡如己病)이 그것이다. 좋은 일을 보면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선비 정신이 곧 파이낸스의 본질과 맞닿아 있고, 이것이면 금융의 삼성전자처럼 한국 금융도 세계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매경TV 매경출판 대표, 매일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 등 ▷서울대 경제학부 객원교수 ▷연우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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