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11년 만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얼어붙은 한·중 양국 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공동성명 발표가 아닌, 단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재명 대통령이 주고받은 짧은 농담이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 샤오미 스마트폰을 선물로 건네자, 이 대통령은 “통신 보안은 괜찮습니까?”라고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고, 시 주석은 “백도어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오랫동안 ‘높고 먼 존재’로 인식되던 중국 최고 지도자가 의외의 유머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날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시진핑 주석은 이례적으로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지도자가 주도해 온 국가 이미지 전략은 오랫동안 대내·대외를 크게 구분하지 않고 ‘강한 리더’ 이미지를 동일하게 투사해왔다. 그러나 최근 대외 무대에서만큼은 미소와 유머를 활용해 부드러운 톤을 연출하는 이른바 ‘두 개의 얼굴’ 전략이 감지된다. 경주 APEC은 이러한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였다.
정치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말하는 ‘정치의 개인화’(Political personalization)도 이번 장면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라핫과 쉬퍼(2007)(1)*는 정치가 제도 중심에서 지도자 개인의 서사와 성격 중심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설명했으며, 반 알스트(2012)(2)* 등은 지도자 이미지가 곧 국가 브랜드로 읽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경주 회담은 바로 그 ‘이미지 정치’가 직접 작동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부드러운 이미지가 곧바로 정책적 유연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외용 이미지 전략이 과잉 해석될 경우 양자·다자 협상에서 불필요한 기대와 실망의 사이클이 생길 수 있다. 이미지가 실질적 신호로 작동하려면 경제·통상 협력의 구체화, 지역 안보 대화의 유연성과 같은 제도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한국과 중국 언론의 이번 회담에 대한 보도가 '온도차'를 보인 것도 눈여겨볼 만 하다. 한국과 서방 언론은 시 주석의 미소와 자연스러운 표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중국 관영 매체는 정형화된 정면 사진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동일한 장면이 서로 다른 이미지로 재구성되는 것은 미디어 문화와 수용 구조의 차이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이 '천인천면(千人千面)'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회담 직후 “국민 감정을 제고하고 여론을 올바르게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여론을 시민과 언론의 자율적 산물로 보는 한국의 정치 문화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차이는 동일한 사건이 두 사회에서 다른 온도로 해석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이미지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실험이었다. 구조적으로 미·중 전략 구도 속에서 한·중 관계의 완전한 복원은 쉽지 않겠지만, 감정적 교류가 만들어내는 소통의 틈새는 분명 존재한다. 또 정상 간의 서사는 이제 정책 못지않게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체제나 방식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지라도, 그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변화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곧 문화적 온도를 높이는 일이 된다. 외교는 국경에서 이루어지지만, 공감은 문화 속에서 자란다. 정치가 막힌 자리에서도 문화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최여진 맥스밸류 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중국 사회과학원 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 박사 과정
(1)*Rahat, G. & Sheafer, T. (2007). The Personalization(s) of Politics: Israel, 1949–2003, Political Communication, 24(1), 65–80.
(2)*Van Aelst, P., Sheafer, T., & Stanyer, J. (2012). The Personalization of Mediated Political Communication, Journalism, 13(2), 2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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