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조건이 된다면 정년은 없다”
이순재에게 연기는 직업이자 숙명이었다. 그는 예술직업은 정년이 없다는 사실을 행운으로 여겼고, 그래서 평생을 ‘다음 연기’를 위한 준비로 살았다.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했고, 대사를 단순히 암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미를 재현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관객이 몰라도 본인은 안다”며 실수조차 예술적 성찰의 재료로 삼았던 그는, 자기반성과 보완이 배우의 본질이라 강조했다.
시대를 넘어 사랑받은 ‘국민 배우’
그의 전성기는 여러 번이었다. 동양방송(TBC)에 몸담던 시절부터 이미 각광받았고, 언론 통폐합 이후에는 ‘사랑이 뭐길래’, ‘허준’ 등으로 다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특히 그는 생전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꼽았던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세대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았다.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재방송을 보며 웃는다”며, 좋은 작품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배우였다.
“연기는 나의 자유였다”
무대와 카메라 앞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무대는 아무도 제약하지 않는 곳”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연기를 통해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자유는 결코 가볍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신혼 초 20일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촬영에 매달렸고, CF 수익이 거의 없던 시절 출연료만으로 생계를 꾸리며 지독한 노력으로 버텨낸 삶이었다.
“잘생김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
그는 젊은 배우들에게 항상 ‘꾸준함’을 말했다. 순간의 인기보다 매일의 자기 점검과 다음 작품을 위한 내적 성숙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잘생긴 사람은 많다. 중요한 건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 능력”이라고 말하며, 연기는 완성도가 우선이라는 철학을 평생 지켜왔다.
교육자·정치인으로서의 또 다른 삶
그는 대학 강단에서도 후배 양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연기의 기본부터 철저히 가르치며 한 학기 동안 한 작품을 완성하는 수업을 직접 지도했다.
또 한때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그는 “정치는 희생이 필요한 일”이라며 연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고백했다. “연기는 행복을 포기할 필요가 없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 그는 결국 다시 배우의 삶으로 돌아와 관객 앞에 서기를 선택했다.
“열심히 한 배우로 남고 싶다”
생전 그는 ‘수상 경력’보다 ‘꾸준함’을 더 가치 있게 여겼다.
상에 연연하지 않았고, “상은 내가 잘해도 더 잘한 사람이 있으면 못 받는 것”이라 담담히 말했다.
그저 ‘열심히 한 배우’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남겼다.
후배들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그는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의미를 알고, 각자의 창의력으로 세상을 넓혀가라”고 말했다.
배우든 아니든, “어느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공”이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를 이루는 주체임을 강조했다.
우리 시대 ‘어른’을 보내며
이순재는 배우의 길을 ‘끝없는 창조’라고 말했다.
선배를 흉내 내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연기를 창조하라고 조언하던 그는 어느새 한국 대중문화사에 가장 독창적이고 오래 지속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한 시대를 넘어 또 다른 세대에게 계속해서 웃음과 울림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 연기사에서 가장 오래, 가장 성실히, 가장 깊이 연기한 배우 중 한 명으로 남을 것이다.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배우,
평생을 연기로 살아낸 장인 이순재.
그의 마지막 커튼콜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가 남긴 기록들은 이제 우리의 추억 속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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