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기쁨을 만드는 손의 움직임, 히무로 유리의 텍스타일 세계

천을 자르면 웃음이 나타난다. 가위질 하나로 새로운 무늬가 드러나고, 손끝에서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 텍스타일 아티스트 히무로 유리는 이 순간을 ‘기쁨의 탄생’이라 부른다.

히무로 유리의 예술은 늘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우리는 변화를 발견하는 순간 미소 짓는가, 예술은 어디까지 관람자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천을 자르고, 만지고, 참여하는 행위는 작품을 소비의 대상에서 경험의 장으로 바꾼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더 이상 벽에 걸린 오브제가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 완성되는 ‘대화의 존재’가 된다.

이 인터뷰에서 히무로 유리는 ‘기쁨의 창조’라는 자신의 철학이 어떻게 텍스타일이라는 매체를 만나 확장됐는지, 한국에서 받은 영감과 문화적 차이,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촉각의 예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말처럼 기쁨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 기쁨은, 누군가의 손이 작품에 닿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히무로 유리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히무로 유리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오늘의 기쁨’ 전시를 소개해달라
- 이번 전시는 저의 한국 첫 개인전이자 가장 대규모의 회고전이다.
초기 텍스타일 디자인부터 최근 개발 중인 실험적 작품까지 약 170점이 전시됐고 그동안의 창작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제 철학인 ‘기쁨의 창조’를 중심으로, 관람객이 직접 보고, 느끼고,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스닙 스냅(Snip-Snap)’ 시리즈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 ‘스닙 스냅’은 2층 구조의 특수한 생지(원단)로 제작된 작품 시리즈다.
천의 표면을 가위로 자르면 내부에서 새로운 패턴이나 형태가 나타나는 구조로, 제가 디자인한 기본형 위에 관람객이 직접 완성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내가 만든 디자인을 다른 누군가가 손을 대며 자신의 감각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 시리즈는 ‘예술의 완성은 관람자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는 인터랙티브 개념을 담고 있다.

‘유리의 방’과 ‘시바 서울(Shiba Seoul)’은 어떻게 한국에서 영감을 받았나
- 서울의 거리, 고양이, 공원 운동기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사람들 등 일상적인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원래 ‘잔디를 깎는 사람’을 주제로 한 작품 Shiba 시리즈에 ‘서울에서 쉬는 사람의 모습’, ‘커피를 마시는 장면’, ‘고양이의 실루엣’ 등을 추가하며 한국의 여유로운 일상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했다. 한국인들은 바쁜 도시 속에서도 짧은 순간의 여유를 즐기는 법을 알고 있더라.

전시 섹션을 ‘꽃밭’, ‘땅속’, ‘하늘’, ‘바다’로 나눈 이유는 뭔가
- 이 구성은 그라운드시소 팀과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각 섹션은 작품 세계가 지닌 감정의 층위를 상징한다. ‘꽃밭’은 시작과 생명, 즐거움의 탄생, ‘땅속’은 내면의 변화, 실험과 발견, ‘하늘’은 상상력, 자유, 확장, ‘바다’는 감정의 깊이와 여운 
이렇게 일상의 장면들을 감정의 여정처럼 체험하게 하는 구성은
관람객이 ‘자신만의 오늘의 기쁨’을 찾게 하려는 의도다.

가위를 이용한 ‘스닙 스냅’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됐나
- 사람이 웃는 순간을 연구하다가, 변화와 발견의 순간이 가장 큰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천을 자르고, 접고, 구기며 수없이 실험하다가 ‘천을 자르면 새로운 이미지가 드러나는 원단’이라는 독창적인 방식을 고안했다. 즉, 자름(행동) → 발견(변화) → 미소(감정) 의 흐름이 제가 추구하는 ‘기쁨의 순환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렉티브(참여형)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뭔가
- 작품이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쿠션이나 패브릭 등 실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하는 물건에 자신의 감정이나 추억을 투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품이 사람의 손을 거치며 완성될 때, 그건 이미 그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작업 중 가장 어려운 점과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 텍스타일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직조 설계’다. 점 단위의 도식으로 짜인 설계도를 공장에서 실제 천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실패가 반복된다.
그러나 결국 완성된 천을 관람객이 보고 미소 짓는 순간, 그 모든 고생이 ‘기쁨’으로 바뀐다.

SNS 활동과 디지털 플랫폼의 영향은 없나
- SNS를 시작한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해외 브랜드 로에베와의 협업 제안도 받게 됐다.
SNS는 작품의 내용보다는 ‘어떻게 보여줄지’, 즉 시각적 전달 방식에 대한 공유의 장이 됐다.

한국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
-“천을 통해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을 제 사명으로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직접 만지고 체험하는 작품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관람객들이 천의 질감과 변화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다시 발견하길 바란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해외 전시와 한국 전시의 차이점은 뭔가
- 해외 전시(상하이·밀라노·파리 등)는 비즈니스 성격이 강했지만, 한국 전시는 일반 관객들의 감정적인 몰입과 세심한 감상 태도가 돋보였다.
특히 사인회에서 관람객들이 느낀 감상을 일본어로 번역해 전달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영감이 작품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 순간적인 영감을 사진, 메모, 혹은 스케치로 기록한다. 그중 일부는 바로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나 다시 그 기록을 꺼내 새로운 시도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제게 영감은 시간 속에 쌓이는 기억의 조각이다.

색채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 있는 그대로의 색이 가장 아름답다. 꽃의 색은 꽃의 색으로, 잎의 색은 잎의 색으로 표현해야 작품의 본질적인 메시지가 가장 순수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연의 색을 거짓 없이 재현하는 정직함’의 철학과 연결된다.

텍스타일을 예술 매체로 삼게 된 계기는 뭔가
- 원래 제품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학교에서의 디자인 교육이 자동차·가전 중심이라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때 ‘생활 속에서 가장 가까운 소재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천(텍스타일)을 발견했고, 그 이후로 직물의 세계에 빠져들어 ‘만질 수 있는 예술’로 확장시켰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작품을 경험 중심으로 만든 이유는 뭔가
- 보는 예술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며 변화가 일어나는 예술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이 개입할 때 작품이 완성되며, 그 과정에서 웃음이 태어나는 순간이 작가가 추구하는 진정한 ‘기쁨의 예술’이다.

어린 시절 경험이 작업에 준 영향이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종이상자로 집을 짓고, 시계를 쌓아 비행기를 만드는 등 어린 시절의 놀이 경험이 지금의 손작업 중심 창작 방식에 그대로 이어졌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작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궁금하다
- 아버지가 디자이너였고, 그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미술관에 자주 갔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사람 모양 와인 오프너’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장난감 같은 물건을 볼 때마다 느꼈던 ‘작은 행복’이 오늘날 제가 말하는 ‘기쁨의 디자인’의 원형이 됐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며 느낀 건 뭔가
- 세계를 목표로 한 적은 없지만,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가장 큰 도전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는 것이다.
트렌드보다 ‘자기만의 언어’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의 길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문화권 별 관람객 반응의 차이는 뭔가
- 일본은 조심스럽고, 체험에 소극적이다. “괜찮아요, 안 해도 돼요.”라고 한다. 유럽은 매우 적극적이고 “어디를 자르면 되죠?” 하며 바로 참여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적극적이며,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이 차이를 통해 문화에 따라 ‘기쁨의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히무로 유리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히무로 유리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디지털 시대의 텍스타일 아트 방향은 뭔가
- 텍스타일은 본래 아날로그적이지만, 디지털을 통해 그 질감과 변화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새로운 재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SNS 영상이나 디지털 아트로 변화를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촉각의 예술’을 ‘시각적 경험’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영감은 어디서 얻나
- 반려견과 함께 걷는 산책의 순간, 계절의 미묘한 변화, 캠핑에서의 자연 체험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오늘의 기쁨”이다.

작가님의 ‘오늘의 기쁨’은 뭔가
- 전시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직접 보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그 자체가 ‘소소하지 않은 거대한 기쁨’이다. 이 며칠간 느낀 기쁨은 그 어떤 순간보다 넘친다.

마지막으로, ‘기쁨을 전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 기쁨을 전하는 일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 행복을 잊지 않고, 계속 이어나갔으면 한다. 예술을 통해 행복의 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 만드는 사람도, 느끼는 사람도 모두 웃을 수 있도록 말이다.        
 
히무로 유리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히무로 유리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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