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삼국지에서 맹장 여포가 탔다고 하는 명마 적토마. 갈기가 붉고 토끼처럼 빨랐다던 적토마. 이제 파란 뱀(靑蛇)의 시대는 가고 붉은 적토마의 해가 온다. 금년에 유난히 긴 정치적 고난의 강을 가까스로 건넌 우리 앞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다. 트럼프 관세 폭탄을 피해 어렵사리 첫걸음을 떼었지만 그 후유증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먹여살려온 제조업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다. 인구 30배, 제조업 생산량이 우리보다 10배 이상이나 큰 중국의 거센 파도가 우리 경제를 덮치고 있다. 말(馬)의 해인 내년부터 부디 날쌘돌이 적토마들이 앞장서서 경쟁국의 거센 압박을 뿌리치기를 소원한다.
이달 초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 매년 말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경제적으로 선방한 나라들(Which economy did best in 2025)'을 발표하였다. OECD 국가 중 칠레와 코스타리카를 제외한 36개 국가의 경제적 성과 평가에서 한국은 공동 13위를 차지하였다. 변동성이 심한 주식 가격 등을 포함한 평가의 결과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만 매년 평가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지표들은 주목할 만하다. 바로 고용(실업)과 인플레이션(물가)이다. 어느 경제든 먹고사는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고용이고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은 규제, 금융, 공공, 연금, 교육, 노동 등 6대 분야 구조개혁을 국정의 핵심과제로 제시하였다. 그간 주요 개혁 과제를 추진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그러나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표적 개혁 과제는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 정도가 꼽히고 있고 김대중 정부의 4대 개혁(금융, 기업, 공공, 노동), 박근혜 정부의 4대 구조개혁(금융, 공공, 노동, 교육), 그리고 규제개혁은 여러 정부를 거쳐 추진되었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과제들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 과제들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공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개혁의 방향과 일들을 명확히 제시하기 어렵고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것 또한 난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추진하는 6개 개혁 과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교육, 노동, 규제 그리고 금융이고 앞에서 말한 고용(실업) 및 인플레이션과 연결된다.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의 관건은 무엇일까.
역시 고용의 본류는 기업이다. 정부는 기업이 젊은 인력을 많이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고 투자 여력을 늘려 주어야 한다. 역대 모든 정부가 규제개혁을 추진하였지만 규제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지만 있는 규제는 놔두고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니 전체 규제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법령이 많아지고 규제가 본업인 정부 조직의 확대는 규제가 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지원책은 같은 수의 규제를 만들어 낸다. 세금 정책도 문제이다. 복지를 늘릴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는 법인세율을 올리고 있다.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서 투자하고 고용하라고 압박하니 기업은 난감하다. 정부가 기업의 고용에 직접 개입하는 것도 문제이다. 공공기관의 고용에 대한 관여를 넘어 민간기업의 고용까지 참견한다면 기업의 효율성과 사업할 의욕은 점점 떨어지게 마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도 마찬가지다. 중형제도가 범죄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은 공감대를 얻고 있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 물가는 어떤가.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고 통화를 확대하면 물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몇몇 정부에서 물가 책임관을 지정하고 물가를 잡으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지만 성공했다는 평가는 아직 못 들었다. 돈이 풀리고 물가가 오르면 실물인 부동산 등에 돈이 몰리게 마련이다. 돈을 푸는 한편으로 주택 가격을 잡기 위해 여러 규제책을 동원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성공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원가는 올라가는 데 상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게 하면 기업 경영은 더욱 힘들어지고 고용 부진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셋째, 중요한 정책을 사회 각 주체가 나누어 맡는 구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는 국회가 할 일, 법원은 사법부가 할 일, 행정부는 행정부가 할 일을 하고 국민 각자는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면 서로의 능력이 시너지를 이뤄 나라의 경쟁력이 강해질 것이다. 국정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고 국무총리, 각부 장관들, 부처의 구성원들이 포진해 있다. 대통령의 일, 국무총리의 일, 장관의 일, 실·국장과 과장의 일은 나무의 기둥과 줄기처럼 서로 달라야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부처의 실무자가 시간이 지나 장관이 되면 지엽적인 일을 너무 많이 알아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부하에게 위임하고 큰 흐름을 잡는 외부 출신 장관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오히려 많다. 국정은 역삼각형이 아니라 안정적인 피라미드 구조가 유지되어야 정부 효율을 이룰 수 있다.
우리 경제를 적토마처럼 끌고 갈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젊은 인재들이고 그 기초는 기업 살리기와 안정적 살림 운영이다. 미국의 압박과 국내 규제를 피해 해외 투자가 많아지면 국내는 산업공동화로 텅 비게 된다. 대통령 순방에 동행하는 기업의 경영진들은 국익에 기여한다는 애국심이 제일 크겠지만 괘씸죄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나 정부 지원을 얻는 목적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정부에 바라는 최소한의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 정책, 합리적인 정책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 아닐까. 천수보살처럼 모든 국정 과제를 다발적으로 추진하기보다 규제를 줄이고 중요한 과녁 몇 개를 명중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로 선 교육정책이 바로 그 과녁의 하나이고 우리를 미래로 끌고 나갈 적토마를 기르는 일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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