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막을 내린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아시아'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특히 마지막까지 한국팀과 결승전을 두고 다툰 몽골팀은 강력한 체력과 집념을 보여주며 '칭기즈칸의 후예'임을 유감없이 입증했고, 이는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즐비한 강대국들 속에 긴장감 높은 동북아시아에서 흔치 않은 우호국인 한국과 몽골의 관계가 한 예능 프로그램을 촉매로 한층 가까워진 모습이다.
한몽 양국이 정식 수교를 맺은 지도 어느덧 35주년이 지났다. 수교 당시 270만 달러에 불과했던 양국 교역 규모는 200배 이상 늘어난 가운데 지난해에는 6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양국은 지난 2021년 외교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것을 기반으로 현재는 울란바토르 지하철 사업, 희토류 공급망 협력, 몽골 현지 벼 재배 사업 등 전방위적으로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부임한 수헤 수흐볼드 주한 몽골대사는 지난 2일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한몽 수교 35주년 역사를 돌아보는 동시에 향후 양국 관계에 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특히 양국 수교 35주년에 대해 "이 중요한 해에 한국에 있으면서 양국 관계의 의미 있는 기념일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두 나라가 오랜 기간 협력해 왔고, 긴 역사를 가진 관계를 맺어왔다"고 언급했다.
그는 가장 성공적인 ODA 사업으로 성 평등 촉진 프로젝트 '공공 의사결정에서의 성평등 증진 및 몽골 여성 역량 강화 사업'을 꼽았다. 대사는 이로 인해 "지난해 총선에서 여성 의원 32명이 당선돼 전체의 약 23%를 차지하게 됐다"며 "정말로 중요한 프로젝트"고 평가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로 설립된 국립 진단·치료센터를 대표 사례로 꼽았고, 울란바토르 외곽 야르막 신도시 개발의 출발점이 된 '신수원 개발' 사업도 언급하며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보이는 대규모 신도시가 바로 그 사업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몽골 정부는 올해를 '수도 인프라 발전 지원의 해'로 선포하고 수도 울란바토르에 각종 인프라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핵심인 울란바토르 지하철 1호선 사업은 한국 컨소시엄이 지하철 기본 설계를 완료했고, 2026년부터 본격 시작 예정인 건설 사업에는 주요 한국 기업들이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대사는 이에 대해 "양국 간 인프라 협력을 강화시켜주는 사례"라며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 같은 사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입찰 절차는 공개적이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에서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미중 갈등 및 인공지능(AI) 혁명 속에 전 세계적으로 광물 확보전이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10대 광물 부국이기도 한 몽골은 우리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다. 몽골은 구리, 금, 석탄 등 핵심 광물을 비롯해 희토류도 상당 규모 보유하고 있다. 이에 양국은 2023년 산업부 간의 희소금속(희토류) 공급망 협력 MOU를 체결하고, 이를 토대로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흐볼드 대사는 "대사 부임 후 서울에서 열린 정부 간 회의에서 '양국 공동 핵심광물 포럼'을 제안했고, 올해 9월 공동 투자 포럼이 열렸다"며 "한국이 특정 몇 개국에 광물 공급을 의존하는 상황에서, 몽골 자원과 한국 공급망을 결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몽골이 일부 구리 등 일부 금속은 개발했지만 희토류는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며 "한국 정부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몽골 정부는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한몽 양국은 민간 교류도 날로 활성화하고 있다. 몽골은 전체 인구 360만 명 중 거의 10분의 1에 달하는 30만 명이 한국 체류 경험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고 현재도 유학, 근로 및 관광 등의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실력이 우수한 몽골 출신 스포츠 선수들이 배구, 농구 등 한국 프로리그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면서 스포츠 교류도 활성화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내의 한 배구 예능 방송에서 활약한 몽골 배구 선수 인쿠시가 한국 프로배구리그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에 대사는 한국 정부가 비자, 특히 의료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몽골 관광객들에게는 비자 요건을 다소 완화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사는 "(의료 목적 방한 몽골인 수가) 지난해 2만5000명 정도까지 늘었다"며 "이들은 한국에서 적합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한국을 찾는데, 관련 비자를 받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에서도 몽골 여행의 인기가 급속히 높아지면서 몽골을 찾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대표되는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 몽골 밤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별들은 새로운 해외 관광지를 찾는 한국인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다. 대사는 "지난해 기준으로 약 18만 명의 한국인이 몽골을 찾았다. 이제 한국은 중국·러시아를 제치고 몽골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1위 국가가 됐다"고 전했다. 다만 "한국분들이 몽골에 오면 보통 테를지 국립공원만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테를지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몽골의 전부는 아니다. 몽골은 세계 17위의 광활한 국토를 가진 나라이고, 인구 밀도는 가장 낮은 나라"라고 몽골의 매력을 소개했다.
대사는 몽골 정부가 한국인 관광객을 더 유치하기 위해 문화·홍보 행사를 적극 늘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천에서 몽골 전통 의상 패션쇼를 열어 몽골 전통 문화를 선보였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몽골·한국·이탈리아가 함께하는 합동 공연도 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현재 몽골에서는 K팝, K푸드 등 이른바 K컬처가 선풍적 인기를 끄는 가운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몽골인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유통, 전자, 건설 등 각종 분야에 걸쳐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 진출해 있다. 이에 몽골 현지에서도 한국에서와 같은 'K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는 몽골인들의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사는 현재 몽골에서 한국어가 영어, 중국어에 이어 3번째로 가장 인기 있는 외국어로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육식 위주인 몽골의 식생활에 김치가 포함된 것을 꼽았다. 그는 "김치는 이제 우리 식생활에 있어 주요 음식 중 하나가 됐다"며 "10~15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식탁에는 김치가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항상 김치를 먹는다"고 전했다.
한편 지리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몽골은 구공산권 국가이지만 현재 미국 등 주요 서방국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폭넓은 외교 관계를 갖고 있다. 나아가 몽골은 평양에도 대사관을 두고 있는 가운데 남북한 모두와 우호적이고, 친선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한반도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주유엔 대사를 역임해 다자 외교 전문가이기도 한 수흐볼드 대사는 몽골 외교 정책의 큰 축을 '두 이웃'과 '제3의 이웃'이라고 설명했다. 첫째는 국경을 접한 두 이웃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치·경제·안보 협력을 다변화하기 위한 '제3의 이웃' 정책이다. 그는 "문서에는 미국, 일본, 유럽연합, 그리고 대한민국이 몽골의 가장 중요한 제3의 이웃으로 명시돼 있다. 한국은 몽골이 중시하는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했다.
대사는 핵 문제와 관련해 "몽골은 1992년 본국 영토를 비핵지대로 선언했고 같은 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이후 비핵화·비확산 원칙을 매우 엄격히 지켜왔다"며 "한반도에도 이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한 간 대화 통로로 몽골이 주도하는 다자 외교 포럼인 '울란바토르 대화'를 제시했다. 그는 이 포럼에는 미, 중, 러, 일을 비롯해 북한까지 참여하고 있다며 "몽골은 남북한의 접점이 될 수 있고, 일부 전문가들은 남북한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면서 "열린 대화, 열린 마음, 열린 협력이야말로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립은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수흐볼드 대사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국은 몽골의 가장 중요한 제3의 이웃"이라며 희토류와 인프라 개발 등 경제 영역은 물론, 안보와 외교 및 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관계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고 더 깊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며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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