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경제의 심장부인 호찌민시 도심 상권이 유례없는 '동절기'를 맞고 있다. 한때 투자자들 사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추앙받으며 불패 신화를 써 내려갔던 고층 아파트 단지 상가와 주요 대로변 점포들이 임차인을 찾지 못한 채 텅 빈 유령 상가로 변모하는 모양새다. 앞서 코로나19 이후 고착화된 공급 과잉과 온라인 중심으로 급변한 소비 행태가 맞물리면서, 수십억 동을 쏟아부은 투자자들은 이제 은행 이자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에 마주하는 상황이다.
최근 호찌민시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팬데믹 종료 이후에도 도심 상권의 임대난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VP 도시구역 상가에 약 3000억 동(약 168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힌 A씨는 "임차인을 구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고, 현재 받는 월 3300만 동의 임대료로는 대출 이자를 메꾸기도 급급하다"며 "입지와 환경을 믿고 투자했지만 공급 과잉의 파고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했다.
빈쭝구의 레이크뷰 프로젝트 현장 역시 황량함이 감돌고 있다. 고속도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들은 수년째 비어 있는 상태다. 집주인들이 월 임대료를 2500만~3000만 동 수준으로 대폭 낮추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선뜻 나서는 임차인은 전무한 실정이다.
상권 쇠퇴의 징후는 도심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과거 패션의 거리로 명성을 떨쳤던 뉴록구 레반시(구 3군) 거리는 화려했던 자취가 사라지고 '임대(For Rent)' 간판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로변이 침체된 사이, 오히려 임대료가 저렴한 안쪽 골목길은 신규 식당과 스파가 몰리며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레반시 거리에서 골목 안쪽으로 매장을 옮긴 B씨는 "요즘 고객들은 더 이상 길거리 간판을 보고 매장을 선택하지 않는다"며 "SNS(소셜미디어)와 구글 지도, 리뷰 플랫폼을 통해 찾아오기 때문에 비싼 임대료를 내고 대로변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골목길로 이전하며 절감한 임대료를 마케팅과 고객 경험에 투자해 오히려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피부관리샵을 운영한다는 C씨도 같은 이유로 대로변을 떠났다고 밝혔다. 월 5000만 동이 넘는 고액 임대료 대신 3000만 동 수준의 골목길 주택을 택한 그는 "위치보다 온라인 광고의 효율이 훨씬 높다"며 "비용 절감을 통해 사업 안정성을 확보하고 공간 활용의 여유도 생겼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러한 현상은 반코구의 보반떤 거리, 디엔비엔푸, 쩐흥다오, 응우옌딘찌우 등 호찌민의 전통적인 핵심 상권 전반에서 포착되고 있다. 특히 4m 폭의 상가는 팬데믹 이전보다 낮은 5500만~6000만 동 수준에 매물이 나오지만 여전히 임대인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임대료가 과거보다 소폭 조정되긴 했지만 현재 자영업자들의 수익성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고비용 구조를 피하기 위한 '탈(脫) 대로변'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산 가치의 양극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베트남 부동산 컨설팅업체 비 홈즈의 응우옌 투엣 항 대표는 "더썬애비뉴(The Sun Avenue) 단지의 경우 아파트 가격은 3~4배나 폭등했지만 상가 가격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라며 "과거 고급 자산으로 통했던 상가의 투자 매력이 실제 운영 수익 악화로 인해 크게 훼손됐다"고 분석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경기 불황이 아닌 소비 패러다임의 '구조적 전환'이라고 평가한다. 디지털 예약 시스템과 온라인 마케팅의 보편화로 '입지'의 중요성은 낮아진 반면, 높은 고정비는 오프라인 매장의 생존을 위협하는 족쇄가 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상가 시장의 종말을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대형 브랜드나 금융기관, 체험 중심의 레스토랑 등 물리적 거점이 반드시 필요한 업종은 여전히 가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 대표는 "상가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임대료 구조의 유연화, 공유 공간 도입, 온라인과 결합한 서비스 전략 등 시대 흐름에 맞는 진화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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