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당사에는 실로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너무 많아 기억조차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의 정당명이 존재해왔다. 필자의 경험을 소개하자면, 17대 대선 당시 여당 대선후보 TV 토론 사회를 세 차례 맡았는데, 당명이 너무 자주 바뀐 탓에 진행 중 상당한 혼란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당명이 빈번하게 바뀐 이유는 위기 상황 돌파 수단으로 당명 개정을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정당 입장에서는 이름을 바꾸면 국민에게 새로운 인상을 주고 이미지 쇄신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당명 개정을 거론하는 것은 요사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와 관련한 언급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12월 17일, 당 혁신 방안 중 하나로 당명 개정이 논의되는 것에 대해 "단순한 당명 변경이 아니라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국민의힘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차원의 논의"라며 "그 과정에서 당명 개정이 필요하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언급으로 당명 개정 가능성이 전면 부상했는데, 우리 정치사를 돌아볼 때 현 국민의힘의 상황이라면 당명 개정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현재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위기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지난 12월 19일 공개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12월 16~18일, 전국 18세 이상 1001명 대상, 전화 면접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24%에 불과했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국민의힘은 2024년 6월 이후 정당 지지율이 30%를 넘은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여권에 대한 부정적 이슈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음에도 그러한 반사이익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통일교 특검' 찬성 비율은 60%를 넘었지만 정작 특검을 주장하는 세력의 지지율은 20%대에 머무르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그 방증이다. 이러한 지지율 정체 현상 배후에는 장동혁 대표의 전략적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언론과 측근들에게 "저는 저만의 타임 스케줄과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가고 있다"고 언급했다는데, 이는 현재 스탠스가 사전에 구상된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정치 행동이 전략에 기반한다면 그것을 전략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전략은 드러나는 순간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을 전략이라 선언하면 정치적 상대방은 이를 토대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대응하므로 전략의 가치는 순식간에 소멸된다. 따라서 장 대표가 자신의 정치 행위를 전략이라고 공개하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둘째, 외연 확장보다 핵심 지지층 결집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현재의 낮은 지지율을 고려하면 핵심 지지층만으로는 지방선거 승리가 매우 여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정치인은 강성 지지층만으로 선거를 치르는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인데, 그 전략이 작동하려면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유도하고, 전체 투표율이 낮아야 하며, 최소 45% 수준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판단하면, 지방선거 투표율이 총선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선거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또한 현재 국민의힘 지지율은 30%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식 선거 전략을 국민의힘이 채택할 수 없는 환경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전략은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해 현재의 지지율 정체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이 보이는 모습으로는 중도층 지지를 확보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당명 개정이 중도층 지지 확보 수단으로 검토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과거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며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던 경험을 근거로 당명 개정 필요성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중요한 차이를 간과한 주장이다. 2011년 재·보궐 선거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졌고, 이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을 상징하는 색상도 변경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의 본질이 다르다. 현재는 2011년의 디도스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비상계엄 사태에서 비롯된 두 번째 탄핵이 있었던 시기다. 따라서 비교 기준은 2011년이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인 2017년이 되어야 한다. 2017년 당시에도 당명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바꾸었지만 실질적 효과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당시에는 당 내부에서 국정 농단과 탄핵에 대해 사과하는 목소리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반성과 성찰의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명을 바꾸더라도 2017년보다 효과가 더욱 미미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치인과 정당의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성원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아무리 당명을 바꾸어도 국민이 느끼는 이미지가 달라지기는 어렵다. 장동혁 대표가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는 비상계엄 해제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탄핵을 지지해 그나마 정당의 이미지를 지켜온 친한계 인사들을 오히려 징계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내부 기류를 보면 아무리 대표가 노력하더라도 그 진정성과 노력의 효과가 외부로 전달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에 장동혁 대표가 진정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려면, 당내의 내분을 수습하고 일단 ‘모두 함께’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보수와 중도가 함께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떠나간 중도층이 일부라도 국민의힘 지지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지금도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더라고 이런 전략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이 현 상황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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