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이재명 대통령 방중, 한한령 풀고 한중 경제협력 정상화

이재명 대통령의 6년 만의 중국 국빈 방문은 한중 관계 복원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일정이다. 그러나 이번 방중을 평가하는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한중 관계의 본질은 외교적 수사나 정상 간 이벤트가 아니라 경제협력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있다. 한한령은 그 본질을 가늠하는 상징일 뿐,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한한령이 특별한 이유는 명확하다. 사드 배치 이후 한중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식 발표도, 명확한 기준도 없이 작동했고, 완화나 해제 역시 책임 있는 설명이 없었다. 그 결과 문화·관광·콘텐츠 산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을 뿐 아니라, 한국 기업 전반에 “정치적 판단이 언제든 경제로 번질 수 있다”는 불신이 각인됐다. 외교에서 이보다 더 큰 비용은 없다.
 
그래서 한한령은 상징이다. 정치·안보 갈등이 경제협력의 규칙을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이번 방중에서 대통령이 짚어야 할 핵심도 여기에 있다. 한중 관계를 전면 복원했다는 선언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갈등이 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명확한 원칙을 확인하는 일이다. 한한령 문제는 그 원칙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다만 한중 관계 정상화의 핵심은 한한령 해제라는 단일 사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짜 과제는 경제협력 전반의 예측 가능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투자와 공급망, 기술 협력, 인적 교류까지 포함한 경제 관계가 정치 상황과 분리돼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한한령이 풀리더라도 비슷한 방식의 조치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면, 그것은 정상화가 아니라 일시적 완화에 불과하다.
 
이번 방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실용외교의 시험을 받는다. 성과를 포장하는 외교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줄이는 외교가 요구된다. 기업과 시장이 원하는 것은 우호적 표현이 아니다. 최소한의 룰, 그리고 그 룰이 지켜질 것이라는 신호다. 외교의 기본은 신뢰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고, 상식은 감정이 아니라 제도다.
 
한반도 문제 역시 경제와 분리해 볼 수 없다. 대통령이 강조해온 ‘한반도 평화공존’ 구상은 안보 의제이면서 동시에 경제 환경의 문제다. 긴장이 낮아질수록 교역과 투자, 협력의 공간은 넓어진다. 중국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는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다. 다만 이는 중국에 기대는 외교가 아니라, 한미 동맹을 전제로 중국의 책임을 분명히 요구하는 외교여야 한다. 경제협력 역시 이런 구조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해외 사례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치렀지만 지금은 핵심 공급망 협력국이다. 동시에 중국과는 역사적 갈등을 안고 있으면서도 경제 협력을 병행한다. 싱가포르는 미·중 경쟁의 한복판에서도 감정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자국의 규칙과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지키는 데 외교 역량을 집중한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정치와 경제의 전이를 최소화하는 관리 외교다.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한국 외교에서도 핵심은 같다. 미국도 중요하고, 중국도 중요하다.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관리다. 미국에는 동맹의 일관성을, 중국에는 실용 협력의 범위를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경제협력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사안별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확인받아야 한다. 한한령은 그 첫 시험대다.
 
외교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외교는 말이 아니라 비용으로 평가된다.” 또 하나는 이렇다. “좋은 외교는 눈에 띄지 않지만, 나쁜 외교의 비용은 반드시 청구된다.” 이번 방중의 성과는 사진의 수가 아니라, 기업과 시장이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을 얼마나 줄였는가로 평가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관계 개선의 종착지가 아니다. 한중 경제협력 관계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를 가르는 시험대다. 한한령은 상징이고, 본질은 경제다. 그 상징을 넘어 구조를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한중 관계는 ‘정상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 장면 출처대통령실
경주APEC 한중 정상회담 [출처=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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