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Indonesia Story] 油로 흥한자 水로 망하나

  • 인도네시아 기름야자 농장 확대의 딜레마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025년 11월 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부와 북부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집중 호우에 따른 하천 범람과 산사태 상황이 언론을 통해 처음 전해졌을 때만 해도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재해라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 규모가 확대되어서, 사망자는 천 명을 넘어섰고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대규모 피해가 가시화하자 이를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이 빠르게 확산했다.

홍수 피해를 당한 지역의 공통점은 하천 상류에 대규모 기름야자 농장이 있다는 점이다. 신규 농장 조성이나 재식림 과정에서 벌목된 목재가 하류로 쓸려 내려오며 피해 규모를 키웠다. 정부의 보수적 추산치에 따르더라도 피해 복구에만 한화 6조 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홍수 피해의 참상이 알려지자 대규모 농장 개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농장 개발이 허가되고, 무허가 벌목이 관행적으로 용인되어 왔다는 측면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판이 농장 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무엇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핵심 품목 중 하나가 기름야자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인 ‘팜유’였기 때문이다.

사윗(sawit)이라 불리는 기름야자 나무는 열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자수와 동일한 품종이 아니다. 일반 야자수 열매의 지름이 20~30㎝인 반면, 기름야자 열매는 2~5㎝로 크기가 작고, 수백 개의 열매가 하나의 송이를 이룬다. 자생 식물인 야자수와 달리, 기름야자 나무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 아프리카에서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일반 야자열매가 식재료로 활용되는 반면, 기름야자 열매는 식물성 기름 생산을 위한 목적으로 재배되었다. 식민지 시기 기름야자 농장이 집중적으로 분포한 지역은 이번 홍수 피해를 본 수마트라섬 북부였다.

2000년대 이전까지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은 말레이시아였고, 인도네시아가 그 뒤를 이었다. 당시 두 나라는 전 세계 팜유 생산량의 80%를 점유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팜유 생산이 급증하면서 2006년경 두 나라의 생산 규모가 비슷해졌으며, 2010년대에 접어든 후 인도네시아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처럼 팜유 시장 내 영향력이 확대되던 국면에서 2014년 조코위(Jokowi) 정부가 출범했다.

조코위 정부는 인프라 건설과 자원 개발을 통한 경제 성장률 제고에 경제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원재료의 단순 판매가 아닌, 1차 가공을 거친 제품의 수출을 장려했는데, 국제 시장에서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던 팜유가 핵심 정책 대상으로 설정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이러한 정책적 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팜유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2014년 약 3500만 톤(t)이던 생산량은 2020년 4700만t, 2024년 5200만t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생산량은 전 세계 팜유 생산량의 60%까지 확대되었고, 25% 내외의 점유율을 유지한 말레이시아를 따돌리며 절대 강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조코위 정부는 팜유 생산 확대를 정당화할 논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며 대중적 지지를 확보했다. 첫 번째는 환경적 차원의 논리였다. 정제한 팜유를 바이오디젤의 원료로 활용함으로써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성 기름 중 팜유의 생산성이 가장 높다는 점 역시 주목받았는데, 동일 면적 기준 생산량은 대두보다 약 8배, 해바라기씨보다 약 4배 높았다.

2010년을 전후하여 인도네시아가 원유 순수입국으로 전환된 상황에서, 바이오디젤 활용이 경유 수입을 대체하여 무역수지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부각되었다. 이와 함께, 노동집약적 팜유 생산 과정이 고용 기회를 확대하여 농촌 주민의 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음이 강조되었다.

팜유 생산 확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코위 정부는 경유와 혼합하는 바이오디젤의 의무 혼합 비율을 단기간에 대폭 상향시켰다. 7.5%에 불과하던 비율은 2015년에는 15%, 2020년에는 30%로 확대되었으며, 프라보워 정부가 들어선 2025년부터 40% 혼합률이 의무화되었다. 우리나라의 바이오디젤 의무 혼합 비율이 2015년 2.5%에서 2024년 4% 수준으로 완만하게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인도네시아의 정책 추진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알 수 있다.

급격한 혼합률 상승에 대한 대중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디젤과 바이오디젤 간 가격 격차를 보조금으로 보전하는 정책을 펼쳤다. 주목할 측면은 이 보조금 재원을 일반 예산이 아닌 팜유 수출세를 통해 조달함으로써 재정 부담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위상을 고려할 때, 의무 혼합 비율 확대는 과잉 생산의 위험을 흡수하고 팜유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정책 수단으로도 기능했다.

커다란 반발 없이 추진된 팜유 생산 확대 정책은 정부가 기대한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팜유 수출액은 2016년 186억 달러에서 2020년 197억 달러, 2024년 277억 달러로 증가했다. 2024년을 기준으로 할 때, 팜유 수출액은 인도네시아 비석유·가스 부문 무역수지 흑자액의 50%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바이오디젤 혼합률 상승에 따라 경유 수입량 역시 감소해서, 2024년 기준 약 80억 달러 규모의 수입 대체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혼합 비율을 50%로 확대하면 더 이상 경유 수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고용 역시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2015년 1200만 명 수준이던 기름야자 관련 피고용자 수는 2024년 1600만 명을 웃돈 것으로 집계되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 또한 증가해서,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5년 240만t이던 이산화탄소 감축량은 2024년 3500만t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수치만을 놓고 본다면, 팜유 생산 및 활용 증가가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된 연 5% 내외의 경제 성장률 중 상당 부분을 팜유 산업이 견인해 왔다는 평가가 과장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팜유 생산 증대를 뒷받침한 조코위 정부의 또 다른 정책은 기름야자 농장의 대규모 확장이었다. 2014년 1000만 헥타르 수준이던 기름야자 농장 면적은 이후 10년 동안 700만 헥타르 정도 증가했다. 남한의 국토 면적이 대략 1000만 헥타르임을 감안하면, 남한 면적의 70%에 해당하는 규모의 농장이 새로 조성된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신규 농장 조성이 산림 지역의 벌채를 통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남한 면적의 70%에 해당하는 산림이 벌목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개발 규모를 고려하면, 수마트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와 막대한 피해를 자연재해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과도한 산림 전용이 누적된 결과 발생한 인재였다고 규정될 수 있다.

기름야자 농장 개발을 홍수 피해의 원인으로 지목한 비판이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서 확산하자, 정부가 비교적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피해 복구를 위한 대규모 재정 지원을 약속하는 한편, 기름야자 농장의 운영 실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규정을 위반한 농장 허가를 박탈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를 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수정 신호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부 대응의 초점이 허가 조건을 위반했거나 불법 벌목에 관여한 기업에 대한 사후적 제재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요원하다는 사실은 프라보워 대통령의 행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는 수마트라 홍수 현장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기름야자 농장의 탈법적 운영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 선언했다. 그러나 곧이어 방문한 인도네시아 동부 파푸아섬에서 그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했다. 에너지 자급자족 달성을 위해 파푸아 지역 전체에 기름야자 농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라보워의 시각은 인도네시아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인식을 반영한다. 지난 10여 년에 걸쳐 기름야자를 중심으로 한 기업과 관료의 이권 카르텔 구조가 공고화되었으며, 일반 시민 역시 고용 확대와 소득 증가라는 상당한 경제적 과실을 누렸다. 이처럼 팜유 의존적인 사회경제적 구조가 굳건히 확립된 상황에서 기름야자 농장 축소나 생산 조절에 대한 요구가 심각하게 논의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수마트라 홍수는 자연환경을 관리 가능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이번 홍수는 자연환경을 대상으로 한 자기 파괴적 성장 전략을 어느 수준까지 감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공론화해야 할 시급성을 인도네시아 사회에 제기하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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