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전 국회의원]
상법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개정되면서, 이사회 판단의 과정과 근거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까지 주주에게 공개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사회가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핵심 수단은 공시다. 더욱이 올해부터 도입될 ESG 공시를 앞두고 공시제도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작업은 더욱 시급해졌다.
상법 개정에서 주주가치와 ESG를 이해관계자와의 이분법적 대립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ESG의 관계는 G ⊂ S ⊂ E라는 집합적 포함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G(Governance)는 기업 의사결정의 출발점이다. 이사회 구조, 의사결정 절차, 이해상충 관리 등은 기업 활동의 최소한의 토대다. S(Social)는 그 범위를 주주 너머로 확장한다. 노사관계, 원·부자재 조달 구조, 하청 및 협력업체와의 관계, 소비자 보호와 제품 책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E(Environment)는 더 나아가 기업 활동이 미치는 지구환경과 장기적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하는 개념이다. 이 관계는 대립이 아니라 확장이다. G 없이는 S도, E도 성립하지 않는다. 주주가치 중심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면 이해관계자 보호가 훼손된다는 주장은 경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투명한 지배구조와 충실한 공시는 이해관계자 전체의 신뢰를 높이고, 장기 자본비용을 낮추는 경로로 작동한다.
ESG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에 대해 명시된 이상, 이제 기업공시의 중심에는 자본비용(Cost of Capital)이 놓일 수밖에 없다. 이사회가 특정 자본정책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이 주주의 자본비용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를 설명할 수 없다면 충실의무 이행 여부 역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공시는 여전히 “무엇을 했다”는 사실 공시에 머물러 있다. 유상증자를 했는지, 전환사채를 발행했는지, 자사주를 처분했는지는 나열되지만, 그 결정이 주주에게 얼마의 비용을 전가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주주총회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배당가능이익의 처분, 즉 배당을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투자를 할 것인지의 결정이다. 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 자본비용과 예상수익률이므로, 이를 공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주총에서 다루는 또 다른 핵심 안건은 이사보수한도, 즉 회사와 주주를 위해 일하는 이사의 보수다. 회사의 성과는 우수한 경영진과 직원을 확보하고, 이들의 이해관계를 회사 성과와 일치시키는 보상체계에 크게 좌우된다. 임직원에 대한 주식보상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다.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은 대표적인 사례다. 스톡옵션은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주총에서 결정되고, 임원의 보수에 포함해 공시하는 제도로 정착되었다.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 양도제한주식보상(RSU: Restricted Stock Unit)의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스톡옵션의 경우 지배주주와 그 특수관계인(공정거래법상 동일인)에게 부여할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RSU는 성격상 스톡옵션과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제도 미비로 인해 지배주주에게도 부여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RSU는 임직원이 회사 성과에 기여하도록 유인을 부여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지배주주는 이미 주가 상승을 통해 동일한 성과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에, RSU를 추가로 부여할 경우 사실상 이중 보상이 된다. 더욱이 RSU는 이사의 보수총액에 포함되지 않는다. RSU는 임직원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무상으로 자사 주식을 지급받는 장기보상 제도다. 그러나 주식이 실제 지급되기 전까지는 ‘미실현 보수’로 간주되어 임원 보수총액에 포함되지 않는다.
미국 기업들의 경우 임원 보상과 주식기반보상에 대해 명확한 비용 인식과 공시가 이루어진다. RSU와 스톡옵션은 ‘인센티브’가 아니라 명백한 비용으로 처리된다. 어느 임원에게 얼마의 주식보상이 지급되었고, 그로 인해 기존 주주의 지분이 얼마나 희석되는지가 숫자로 제시된다. 반면 국내에서는 RSU가 여전히 모호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장기성과 연계 보상”, “주주와 이해관계 일치”라는 설명은 있지만, 그 비용이 얼마인지, 주주가 실제로 부담하는 희석 효과가 무엇인지는 공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비용을 숨긴 인센티브는 투명한 보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RSU는 주총이 아니라 이사회 결의로 결정되고, 공시에서도 RSU 부여 사실은 주석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언급될 뿐 임원별 보수 공시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결국 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실질적인 보상 비용이 가려져 있는 셈이다. 심지어 지배주주가 여러 계열사에서 등기이사도 아닌 상태로 보수를 수령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미국의 경우 경영진 개개인의 보수 내역을 세부 항목별로 공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컨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은 임원 개별 보수와 주식보상 가치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한 해 최고경영진의 보수가 수천만 달러에 달하더라도 주주들이 그 구성과 규모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 역시 주요 임원의 보상을 총액이 아닌 개인별·항목별로 상세히 공시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벤치마크를 함께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경영진 보상체계를 투명하게 드러내 이사회와 주주 모두의 감시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자료다.
이러한 투명한 공시체계 마련에 대해 기업은 경영 부담이 가중된다고 반발한다. 그 이유로는 첫째 공시 부담의 과도함, 둘째 기업기밀과 전략 노출, 셋째 단기 주가 변동성 확대 및 소송 리스크 증가를 든다. 그러나 이 주장은 부담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기업이 부담하는 것은 공시 비용이 아니라, 그동안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의사결정의 결과다. 자본비용과 RSU는 이미 존재하는 비용이다. 공시는 비용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보이게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전략 노출 주장은 과장되어 있다. 해외 주요 시장에서도 자본비용과 주식기반보상은 상세히 공시된다. 그럼에도 글로벌 기업들이 전략 경쟁에서 불리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투명한 공시는 장기 투자자 기반을 넓히고, 불필요한 할인 요인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왔다. 전략이 아니라 불투명성이 경쟁력이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소송 리스크 역시 공시 자체가 아니라 불성실한 의사결정에서 발생한다. 충분한 정보와 합리적 근거가 공시된다면 이사회는 오히려 보호받는다. 문제는 판단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남는 현재의 공시 구조다. 자본비용과 보상 구조를 숨긴 채 사후적으로 “최선의 판단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분쟁의 씨앗이다.
ESG 공시 역시 마찬가지다. ESG는 가치 선언이 아니라 경제적 의사결정의 정보 집합이어야 한다. 환경 투자가 얼마의 비용을 수반하는지, 공급망 관리가 리스크를 얼마나 줄이는지, 지배구조 개선이 자본비용을 어떻게 낮추는지에 대한 연결 고리가 제시되지 않으면 ESG 공시는 구호에 그치고 회사의 재무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없다. 특히 E와 S 영역은 비용과 효과를 함께 보여줄 때 의미를 갖는다. 환경 규제 대응 투자, 안전 투자, 협력업체 지원이 단기 비용인지, 중장기적으로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추는 투자자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투자자는 판단할 수 없다. 공시의 역할은 기업을 ‘착한 기업’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과 비용을 정확히 보여주는 데 있다.
공시를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누가 기준을 만들고, 누가 평가할 것인가다. 정책당국이 직접 ESG 점수를 매기거나 특정 평가기관을 지정하려는 유혹은 경계해야 한다. 평가 주체를 선정하는 순간 그 주체는 렌트를 얻고 권력을 갖게 된다. 기업은 비용만 부담한 채 ‘시어머니’가 늘어난다. 반발은 당연하다.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은 분명하다. 정보는 공시하고, 평가는 시장이 한다. 정부의 역할은 평가자가 아니라 심판이다. 공시가 충실히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허위·부실 공시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묻는 것이 당국의 역할이다. 당국은 공시의 범위와 형식을 설계하고, 기업이 비용과 위험을 숨기지 않도록 유인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기업에 투자할지는 시장의 몫이다.
공시는 주주자본주의의 무기가 아니다. 공시는 자본비용을 드러내고, 책임을 명확히 하며, 장기적 신뢰를 축적하는 인프라다. ESG 공시는 그 연장선에 있다. 상법 개정이 자본시장에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이제 판단 가능한 시장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공시는 그 출발점일 뿐이다.
정책당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비용은 숨길 수 없게 하고, 둘째 판단은 시장에 맡기며, 셋째 책임은 명확히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기업의 반발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기업의 불편보다 투자자의 판단 가능성을 우선한다. 자본비용과 RSU 공시는 규제가 아니라 정상화다. 금융당국이 이 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갈 때, ESG 공시는 유행어가 아니라 시장 언어가 될 것이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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