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28일 김건희 여사의 정치적 영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 지위만으로 형사책임을 확장할 수는 없다고 결정했다. 통일교 금품 수수와 관련해 알선수재 책임은 인정하지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태균씨 여론조사 의혹에 대해서는 공모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결론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우인성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에 앞서 법의 적용에는 권력자와 비권력자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무죄추정 원칙과 '불분명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은 지위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는 김 여사가 자신의 계좌가 시세조종에 이용될 가능성을 인식했거나 이를 용인했을 여지는 있다고 봤다. 다만 주가조작 세력과 가격을 조작하기 위해 역할을 분담하거나 의사를 결합해 범행을 실행했다고 볼 증거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주가조작 세력 중 누구도 김 여사에게 작전 내용을 직접 설명하거나 역할을 부여했다는 진술이 없고, 김 여사가 직접 매매 주문을 했다는 자료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김 여사를 자금을 맡긴 투자자, 이른바 전주(錢主)의 범위를 넘지 못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모 관계가 성립하려면 범행 전반에 대한 인식과 역할 수행이 엄격히 증명돼야 한다"며 "이와 같은 증명이 부족하다면 유죄의 의심이 들더라도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행위에 대해서는 거래 시점과 계좌 운용 형태, 시간적 간격 등을 고려할 때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명태균씨가 제공한 여론조사는 김 여사 부부에게 전속적으로 귀속된 재산상 이익으로 보기 어렵고, 여론조사 실시와 공표 과정에서 김 여사 측의 지시나 관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여론조사의 대가로 특정 인사의 공천을 약속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치자금법상 처벌 요건인 기부와 대가성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통일교 금품 수수와 관련해서는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2022년 7월 수수된 금품에 대해 김 여사가 통일교 측의 정부 차원 지원 요청을 인식한 상태에서 금품을 받은 것으로 판결했다. 대통령 배우자는 대통령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인 만큼, 높은 청렴성과 절제가 요구된다는 점도 양형 사유로 제시됐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자신의 지위를 영리 추구의 수단으로 오용했다고 지적했다. 권력 주변에는 금권의 접근이 상존하므로 지위가 높을수록 이를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하는데, 고가의 사치품을 수수한 점을 불리한 양형 사정으로 봤다는 것이다.
판결 직후 김건희 특검팀(민중기 특별검사)은 "공동정범 판단과 정치자금법, 청탁 관련 판단은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유죄 부분의 양형 역시 사안에 비해 미흡하다"고 밝혔다. 특검은 항소를 통해 1심 판단을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김 여사 측 변호인단도 선고 직후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 재판부에 감사한다"면서도 "알선수재죄 형량이 다소 높게 나왔다"며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 배우자의 정치적 영향력을 형사책임 판단에서 어디까지 고려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법원은 영향력의 존재 자체는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곧바로 공모나 형사책임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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