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자영업이 깊은 위기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한때 저녁이면 발 디딜 틈 없던 강남 일대가 한산한 풍경은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강남 상권은 지금 이런 지경이지만, 서울 강북, 수도권, 지방은 경고등이 울린 지가 오래되었다. 자영업자들의 체감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고, 통계는 이 위기가 우연이나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행정안전부 인허가 자료에 따르면 외식업 폐업률은 2020년 8.2%에서 2024년 11.0%로 5년 연속 상승해 최근 10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심각한 것은 폐업 점포 수가 개업 점포 수를 넘어서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를 제외하면 보기 드문 현상으로, 자영업 생태계 자체가 축소 국면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업종별로 보면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PC방, 노래방, 영화관 등 2030세대 소비에 의존하던 업종에서 매출 감소와 폐업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30세대 매출 감소 폭이 전체 매출 감소보다 크다는 점은, 자영업 위기의 핵심이 소비 구조 변화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 배경에는 20대와 30대의 주거·금융 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주택 가격 급등기 동안 이들은 대규모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내 집 마련에 나섰고, 그 결과 가처분소득의 상당 부분이 원리금 상환에 고정됐다. 과거 자영업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던 젊은 세대가 이제는 소비 여력을 상실하면서, 외식과 여가, 문화 소비는 급격히 위축됐다. 자영업 침체는 상권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 가계의 재무 구조가 바뀐 결과다. 물론 2030세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감소되었다.
고령층의 변화 역시 자영업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통계상 고령층의 자산은 크게 늘었지만, 그 대부분은 주택에 묶여 있다. 자산은 있지만 현금 흐름이 부족한 고령층은 20대 30대의 소비여력 감소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40대 50대에 직장에서 나온 사람들이 대거 자영업으로 이동했지만, 고령자가 되어서도 생계 대책으로 자영업 시장에 머물러 있다. 2024년 기준 60세 이상 고령 자영업자는 216만 명을 넘어 전체 자영업자의 약 40%를 차지하고, 이들 대부분은 고용원을 두지 않는 생계형 자영업자이다. 소비는 늘지 않는데 공급자는 줄지 않는 구조 속에서 경쟁은 과열되고 소득은 낮아진다.
사업 매출이 떨어지디 보니 대출금 상환 능력도 바닥이 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이미 1,000조 원을 넘어섰고, 연체율은 장기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폐업을 하더라도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수 자영업자는 사실상 퇴로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에 AI와 로봇 기술 확산이라는 중장기 변화까지 겹치면, 단순 서비스 중심의 자영업은 더 큰 구조적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역대 정부에서 많은 자영업 정책을 시행해 왔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대증적 임시방편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때이다. 버티게 하는 정책에서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당면한 자영업 연체율과 사업부도 사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금융 대책이 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회생 가능성이 낮은 자영업자에게는 조기 채무 조정과 폐업 지원을 통해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이는 개인을 돕는 정책인 동시에 금융 시스템의 연체와 부실을 줄이는 정책이다. 반대로 경쟁력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자영업자에게는 단순 대출이 아니라 경영 개선과 업종 전환을 전제로 한 정책금융이 제공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고령 생계형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자영업에서 단계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경로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임금 근로자로 재진입을 지원하고, 단축 근로와 재고용 제도를 활성화해 자영업 외의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동시에 주택연금과 같은 자산 유동화 수단을 강화해, 주택에 묶인 자산이 최소한의 현금 흐름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령층을 자영업 시장에 계속 머물게 하는 것은 개인에게도, 경제 전체에도 지속가능한 해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또한 AI와 로봇 혁명에 대비한 자영업 구조 전환도 시급하다. 단순 판매와 반복 서비스 중심의 자영업은 기술 대체 위험이 크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지역 특화 산업, 돌봄과 문화 등 대체가 어려운 영역으로의 전환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는 자영업 정책이 산업 정책과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편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이 요구된다. 자영업자는 사실상 생계형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고용보험과 사회보험의 보호에서는 여전히 취약하다. 자영업자에게 적합한 고용보험 가입 체계를 정비하고, 폐업이나 소득 급감 시 일정 기간 최소한의 소득을 보전해 주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자영업자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지난 국민연금 개혁 시에 채택되었던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역시 의미있는 규모로 체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소득이 불안정한 자영업자는 보험료 체납과 납부 중단에 쉽게 노출되고, 이는 노후 빈곤으로 직결된다.
자영업 위기는 골목상권 문제일 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 대한 구조적 경고음이다. 인구, 기술, 소비의 세 축이 동시에 이동하는 상황에서 고통받는 자영업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 자영업은 ‘마지막 생계 수단’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하나의 경로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영업 문제는 자영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사회적으로 큰 비중을 점하고 있는 자영업과 자영업자의 성공적인 산업 및 고용 재배치는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중요 정책과제이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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