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밀라노] 4년 후 꿈꾸는 김상겸 "2030 알프스 올림픽땐 金 따고 펑펑 울어야죠"

  • 고가 장비 부담 알바로 버틴 인고의 시간…2019년 하이원 입단 인생 바꾼 전환점

  • 아내, 경기력 우상향 이끈 원동력…"힘들어도 포기 않는 선수로 기억됐으면"

  • 김상겸 銀 스타트…유승은 銅·최가온 金 韓스노보드 종목 세계 3위로 최고 성적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결승 시상식에서 김상겸이 은메달을 깨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결승 시상식에서 김상겸이 은메달을 깨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0대에도 제가 사랑하는 스노보드를 타고 올림픽 무대를 누비고 싶어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김상겸(하이원)의 애창곡은 가수 터보의 '스키장에서'다. 하얀 설원 위에서 펼쳐지는 낭만을 노래한 이 곡처럼 김상겸의 인생은 오로지 '눈'과 '보드'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가 지나온 현실의 설원은 노랫말처럼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숱한 역경과 위기들이 눈보라처럼 그를 덮쳤다.

그럼에도 김상겸은 꺾이지 않았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묵묵히 인내한 끝에 그는 마침내 서른일곱의 나이로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14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번 올림픽이 '너무나 간절했다'고 털어놓은 김상겸은 "스노보드를 타면서 단 한 번도 돈을 좇아 본 적은 없다. 스노보드가 좋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저는 느릴진 몰라도 포기하지 않는 선수다. 묵묵하게 꾸준히 걸어온 덕분에 올림픽 메달이라는 결과가 찾아와준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김상겸은 지난 8일 이번 대회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019초 차의 명승부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김상겸 제공
김상겸은 지난 8일 이번 대회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0.19초 차의 명승부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본인 제공]
◆영광 이전 인고의 시간

김상겸은 지난 8일 이번 대회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0.19초 차의 명승부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올림픽 한국 선수단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경기 직후 그는 방송사 인터뷰 도중 눈물을 훔쳤다. 평소 감정 표현이 적어 '테토남(남성성이 강한 남성)'으로 불리던 그였지만 12년의 한이 풀리는 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당시를 떠올린 김상겸은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인데 이번에 바뀐 것 같다. 주변에서 이제 '에겐남(남성성이 약한 남성)'이라고 부른다"며 쑥스러워했다.

지금의 영광 뒤에는 긴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과거 실업팀이 없어 생계유지가 쉽지 않았던 그는 훈련 기간 중 주말 하루는 아르바이트, 비시즌에는 공사장 일용직 노동에 뛰어들어야 했다. 고가의 장비 비용도 부담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195㎝짜리 보드는 한 대 가격만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김상겸은 "보드는 소모품이라 탄성이 죽으면 매년 새로 구매해야 한다. 한 시즌에 5~6대를 타는데 고정 비용만 2500만~3000만원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2019년 하이원 스포츠단 입단은 김상겸의 선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었다. 든든한 소속팀이 생기자 훈련 환경이 달라졌다. 그는 "금전적 여유가 생기니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찾아왔다. 제 연봉을 털어 장비를 사지 않아도 됐고, 전지훈련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김상겸이 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아내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김상겸이 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아내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내는 나의 힘

소속팀의 지원으로 훈련 환경은 안정을 찾았지만, 올림픽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2014년 소치 대회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출전해 예선 17위를 기록했던 김상겸은 2018년 평창 대회에선 16강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2022년 베이징 대회에선 예선 24위로 짐을 싸야 했다. 뼈아픈 좌절의 연속이었다.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었다. 특히 2023년 결혼한 아내 박한솔씨는 김상겸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는 "가족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기면서 책임감이 그전과 달라졌다. 완전히 나를 믿어주는 '내 편'이 생긴 것 같았다"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경기력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런 절실함과 책임감이 겹치면서 이후 성적이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이 부담이 아닌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김상겸은 은메달을 딴 직후 아내와 영상 통화를 하며 함께 아무 말 없이 계속 울기만 했다 사진본인 제공
김상겸은 은메달을 딴 직후 아내와 영상 통화를 하며 아무 말 없이 계속 울기만 했다. [사진=본인 제공]
이번 밀라노 올림픽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얼굴도 역시 아내였다. 그는 "은메달을 딴 순간 집에 빨리 가서 아내가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영상 통화를 했는데 그땐 둘 다 아무 말 없이 계속 울기만 했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대회 직후 얻은 '사랑꾼 보더'라는 별명에 대해 김상겸은 "전혀 아니다. 무뚝뚝하고 표현도 서투른데 좋게 봐주신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묻어나는 아내를 향한 애틋함은 숨길 수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그가 흔들리지 않고 올림픽 시상대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묵묵히 옆을 지켜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준결승에 출전한 김상겸이 결승전에 진출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준결승에 출전한 김상겸이 결승전에 진출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꿈은 2030년 올림픽 '금메달'

서른일곱, 적지 않은 나이지만 김상겸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은퇴는커녕 4년 뒤를 바라보고 있다.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종목 특성상 30대 후반, 40대 초반 선수들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김상겸은 "너무나 값진 은메달이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선수라면 다들 1등을 하고 싶어 한다. 저도 마찬가지"라면서 "2030년 알프스 동계 올림픽에도 당연히 도전할 생각이다. 그때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는 게 제 꿈이자 목표"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다음번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정말 시원하게 펑펑 울어도 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이제 어디 가서 테토남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면 안 될 것 같다"고 웃었다.

훗날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김상겸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화려한 수식어보단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담백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선수 그리고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선수로 남고 싶다.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증명한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획득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최가온이 시상식을 마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획득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최가온이 시상식을 마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스노보드, '르네상스 맞이'

김상겸의 은메달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스노보드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유승은(성복고)이 여자 빅에어에서 '깜짝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스노보드 종목 최초 여성 메달리스트라는 새 이정표를 세웠다.

최가온은 하프파이프에서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특히 그는 결선 1차에서 넘어져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3차 시기에서 극적인 연기를 펼쳐 정상에 오르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미국 올림픽 방송 주관사 NBC는 이 장면을 '대회 전반기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설상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스노보드는 금, 은, 동메달을 각각 한 개씩 수확하면서 이번 대회를 마쳤다. '스노보드 강국' 일본(금 4, 은 2, 동 3)과 오스트리아(금 2, 은 1, 동 1)에 이어 종목 순위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세계 무대에 한국 스노보드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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