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광화문은 ‘사건의 장소’였다. 집회와 선언, 기념과 항의가 집중되는 정치적 광장. 이 역할은 중요했고,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사건 중심의 광장은 반복을 만들기 어렵다. 사건은 기억을 남기지만, 습관을 만들지는 못한다. BTS 이후의 질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광화문은 여전히 사건만을 기다리는 공간일 것인가, 아니면 일상의 리듬이 축적되는 문화의 플랫폼이 될 것인가.
문화가 살아남는 방식은 웅장한 순간보다 잦은 접속에 있다. 한 번 크게 울리는 음악보다, 자주 다시 불리는 노래가 오래간다. 아리랑이 그랬다. 그래서 광화문이 맡아야 할 역할은 ‘대형 이벤트의 무대’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만남의 구조다. 매번 같은 형식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언제 와도 무엇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다.
세계의 문화 도시들은 이 점에서 분명한 공통점을 가진다. 중심 광장은 늘 열려 있고,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진다. 공연이 없을 때도 머물 수 있고, 전시가 바뀌어도 길은 이어진다. 문화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환경이기 때문이다. 환경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몸으로 익히게 만든다. 광화문이 문화의 환경이 되려면, “오늘은 무엇을 보여줄까”보다 “내일도 다시 오고 싶을까”를 먼저 물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통제의 유혹을 내려놓는 일이다. 광화문을 ‘정제된 이미지’로 관리하려는 순간, 반복은 멈춘다. 불편함과 우발성, 작은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공간은 이벤트는 만들 수 있어도 문화는 만들지 못한다. 문화는 늘 예측을 벗어난다. 그 벗어남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도시는 플랫폼이 된다.
정책의 관점에서도 기준은 명확하다. 광화문을 둘러싼 평가는 방문객 수나 행사 횟수가 아니라, 재방문과 재사용이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시 오고,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쓰이는가. 학생의 산책로가 되고, 시민의 연습장이 되며, 예술가의 시험 무대가 되는가. 이 다층적 사용이 쌓일 때, 광화문은 ‘한국 문화의 얼굴’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엔진이 된다.
BTS 공연 이후 광화문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화려하지 않다. 더 크게, 더 자주가 아니라 더 오래, 더 자주 다시다. 반복 가능한 문화는 거대한 선언보다 작은 일상을 선호한다. 아리랑이 수백 년을 건너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광화문을 기념비로 남길 것인가, 플랫폼으로 설계할 것인가. 사건의 장소로 유지할 것인가, 습관의 공간으로 바꿀 것인가. BTS 이후의 한국 문화가 진짜로 다음 단계로 가는지는,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으로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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