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달 8일 일본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316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전체 중의원 의석수(465석)의 3분의 2(310석)를 넘는 의석수를 획득하였다. 자민당 단독으로 3분의 2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한 것은 2차 대전 이후 최초이며 선거 전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여기에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의 의석을 합하면 총 352석이 된다. 반면,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연합하여 결성한 ‘중도개혁연합’은 49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참패하였다. 선거기간이 짧았고 새롭게 창당한 정당의 정책홍보 기회가 부족하였다는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제시된 정책의 목적과 이념이 불분명하여 기존의 지지자들로부터 외면받은 것이 참패의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중도개혁연합’은 입헌민주당의 안보 정책, 에너지 정책 등을 대폭 수정(우경화)하면서 중도 세력의 결집을 목적으로 결성되었으나 이것이 오히려 진보 정책의 후퇴로 받아들여지면서 지지표의 이탈을 불러왔다고 분석된다. 중의원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한 다카이치 2기 내각은 향후 주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정권 기반을 확보하였다. 자민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모든 법령은 설령 참의원에서 부결되더라도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다시 가결할 수 있다. 다만 헌법 개정은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여 여전히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민당은 어떻게 역사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필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적 매력이고, 둘째는 일본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대전환이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인들은 다카이치 총리가 온 마음을 다하여 일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필자가 참석한 한 국제회의에서 일본의 어느 참석자는 “어쨌든 그녀는 열심이다.”라고 말했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어두운 정치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이념과 목표가 분명하고 이를 알기 쉬운 말로 국민에게 전달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가 되기 이전에도 경제안보담당장관을 역임하면서 일본이 처한 안보 상황에 대해 유튜브 등 SNS를 활용하여 다양한 정책홍보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고 온라인상의 활동을 바탕으로 막강한 대중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축적된 선한 정치인 이미지와 SNS를 통한 정책 전달력은 중의원 선거에서 압도적 위력을 발휘하였는데 야당의 선거 홍보 영상보다 자민당의 선거 홍보 영상 조회수가 10배 이상 많았다는 게 증거이다. 총선거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각 당의 총수가 참석하는 NHK의 TV 프로그램 불참에 대해 사과하였다. 선거 유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나눈 악수로 인하여 손목의 류마티스가 재발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싹 마른 호리호리한 여성 정치인. 체력적으로 여러모로 한계가 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노력하는 정치인. 이런 정치인에게 일본을 맡길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감. 이런 것들이 작용하여 다카이치 열풍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또 하나 원인은 국제정세의 대전환이다. 특히 중국과의 대립 격화가 선거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으나 새로운 질서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과거 자신을 지켜준 세력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기대는 이제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오직 자신뿐이다. 세계는 각자도생과 약육강식의 세계로 변모하고 있다. 이것이 보통의 일본 국민이 가지는 인식이지 않을까? 그런데 일본이 처해 있는 현실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분명 무력감에 빠질 것이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믿을 수 있는 지도자와 강력한 정부이다. 여기에 힘을 실어주어야 일본이 변화될 수 있다. 새로운 국제정세에 적응할 수 있다. 일본 국민은 필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선거 이전에 벌어진 중국과의 처절한 대립은 이러한 생각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중국은 일본에 강력한 보수정권의 등장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바람과 달리 중국의 대일 압박은 오히려 이를 더 도와준 셈이 되고 말았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특징의 하나는 정책대결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자민당과 야당 간에 정책적 차별성이 사라지면서 정책을 통한 득표전략은 거의 무력화되었다. 예를 들면 자민당은 그동안 야당이 주장하던 감세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소비세의 한시적 폐지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반면 중도개혁연합은 안보와 에너지 정책의 보수화 전략을 취했다. 일본이 처한 안보적 현실, 그리고 에너지 현실을 수용하면서 자민당과 유사한 안보 전략과 원자력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정당 간 정책 차별성이 사라진 ‘정책의 중도화’ 현상이 나타났고 정책대결은 선거의 초점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지지 여부가 선거의 초점으로 부상한 것이다.
일본의 야당이 궤멸하면서 일본의 보수화는 더욱 속도를 더해 갈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필자는 일본이 군국주의의 길로 갈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국제정세가 전전(戰前)과는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일본은 이른바 ‘보통국가’로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이 내세운 공약을 보면 그 길이 보인다. 다카이치 정부의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안보로 통한다.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법과 제도의 정비를 더욱 서두를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교전권과 군대 보유를 부정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할 것이다. 경제도 안보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다. 책임 있는 확장 재정의 핵심 분야는 바로 ‘위기관리투자’를 통한 경제안보 리스크 대응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일본과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가? 지금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일본이 가지는 전략적 가치를 새롭게 판단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하다.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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