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원칙·상식] 사법3법 강행, 숙의 없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전격 사퇴는 한 개인의 거취 문제로만 볼 사안이 아니다. 사법부의 공식 의견 표명과 숙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사법3법’이 속전속결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제도적 경고음이다.

법원행정처장은 전국 법원의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자리다. 현직 대법관이 맡는 상징적 위치이기도 하다. 취임 42일 만의 사퇴는 극히 이례적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사법부가 제도 개편의 방향뿐 아니라 ‘속도’와 ‘절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3법은 △재판소원 도입 △법 왜곡죄 신설 △대법관 증원이라는 굵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하나가 헌정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다. 재판소원은 사실상 4심제를 열 수 있는 구조이고, 법 왜곡죄는 판·검사의 법 해석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안 역시 단순한 인원 증원이 아니라 사법 시스템 전체의 구조를 흔드는 문제다.

개혁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기관의 권한과 구조를 바꾸는 일은 정치적 다수의 의지로만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특히 재판의 독립과 직결되는 제도라면 더욱 그렇다. 사법부가 “숙의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음에도 이를 외면한 채 법안을 처리하는 모습은 권력분립의 균형을 위태롭게 한다.

권력분립은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가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장치다. 입법부가 다수 의석을 가졌다고 해서 헌정 질서의 구조까지 일방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 역시 국민의 신뢰 위에 존재하는 기관이다. 신뢰는 절차적 정당성에서 나온다.

문제의 본질은 ‘개혁 찬반’이 아니다.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다. 충분한 공론화, 전문가 논의, 제도적 영향 분석 없이 속도전에 나서는 것은 오히려 개혁의 정당성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길이다.

국회는 멈춰야 한다. 사법제도 개편은 정권의 유불리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장기적 제도 설계에 관한 문제다. 협의체를 구성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개혁은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설득과 신뢰로 완성된다.

사법부와 입법부의 긴장은 민주주의의 일부다. 그러나 그 긴장이 균형을 무너뜨리는 순간,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숙의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사진연합뉴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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