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중동의 불길, 한반도로 옮겨 붙게 해선 안 된다

  •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비상한 각성과 총력 대응이다

중동에서 터진 전쟁의 불길이 이제 한반도 창문 밖까지 번져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충돌은 먼 사막의 포성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국제 유가를 흔들고, 세계 해상 물류를 뒤틀고, 동맹의 군사 배치를 바꾸며, 동북아 안보 지형까지 흔들고 있다. 중동의 전쟁이 한반도의 경제와 안보에 충격파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상황이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미국의 전략 배치다. 미국은 일본에 있던 강습상륙함 트리폴리함과 31해병원정대 전력을 중동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미국이 유럽·중동·인도태평양을 하나의 작전 공간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며, 한 지역의 전쟁이 다른 지역의 안보 공백 우려로 이어지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프랑스, 영국, 중국까지 직접 거명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아직 정식 외교 요청 단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동맹국들에게 중동전의 부담을 함께 지라는 신호임은 분명하다.

13일 우리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와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9601포인트172 내린 548724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 지수는 456포인트040 오른 115296으로 마감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125원 오른 14937원으로 집계됐다 사진연합뉴스
13일 우리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와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96.01포인트(1.72%) 내린 5,487.24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 지수는 4.56포인트(0.40%) 오른 1,152.96으로 마감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12.5원 오른 1,493.7원으로 집계됐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으로선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에너지 안보의 목줄과도 같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와 LNG의 대부분은 아시아로 향하며, 한국·일본·중국·인도가 대표적 수요처다. 해협이 흔들리면 서울의 주유소 가격표가 먼저 반응하고, 환율과 물가, 산업 원가와 가계부담이 연쇄적으로 출렁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곧바로 군사적 개입을 결정할 수는 없다. 한국은 중동의 이해당사자이면서 동시에 한반도 안보의 직접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반도 주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북한은 동해상으로 10여 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고, 이어 김정은 참관 아래 600㎜ 초대형 방사포 12문을 동원한 사격훈련을 공개했다. 한국군은 이를 탄도미사일 발사로 평가했고, 북한은 초정밀 방사포 훈련이라고 주장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메시지는 하나다. 국제 정세가 어수선한 틈을 타 한반도 긴장을 높이고, 자신들의 전술핵·장사정 타격 능력을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사정거리 420㎞를 굳이 거론한 것도 한국을 겨냥한 위협임을 숨기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다.



일본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은 이미 방위비를 GDP 대비 2%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최근 다카이치 총리는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재무장 의지를 노골화했다. 이는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니라 전후 일본 안보 정책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북한의 도발, 중국의 군사력 증강, 러시아·북한 밀착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북아 군사 균형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한국으로선 북한의 위협만 볼 수 없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까지 함께 봐야 하는 더 복잡한 환경에 놓였다.

장거리 미사일 관련 장비를 실은 차량이 9일 일본 구마모토시 육상자위대 주둔지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장거리 반격 미사일을 이달 말까지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AFP
장거리 미사일 관련 장비를 실은 차량이 9일 일본 구마모토시 육상자위대 주둔지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장거리 반격 미사일을 이달 말까지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AFP]



러시아와 중국은 또 다른 방식으로 판을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즉각적인 휴전과 협상 복귀를 촉구하며 외교적 중재자 이미지를 키우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 농축우라늄의 러시아 이전 같은 구상을 다시 들고 나오며 중동 사태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러시아는 유가 급등의 직접 수혜를 누리고 있다. 제재와 전쟁으로 움츠러들었던 러시아 경제가 중동 위기를 틈타 숨통을 틔우고 있는 셈이다. 국제 정치의 냉혹함이 여기 있다. 누군가는 전쟁을 치르고, 누군가는 중재를 말하며, 누군가는 그 틈에서 이익을 챙긴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에 놓인 나라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다.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이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무역국가다. 안보 불안은 곧 경제 불안으로 직결된다. 실제로 중동전 이후 국제유가가 치솟고, 한국 주식시장은 급락했으며, 원화 가치는 17년 만의 저점 수준까지 밀렸다. 정부가 연료 가격 상한제와 에너지 바우처, 전력 운용 조정까지 검토하게 된 것은 이 위기가 단지 외교안보 뉴스가 아니라 국민 생활과 산업 현장을 직접 흔드는 현실이라는 방증이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에는 평시의 느린 대응이 아니라 비상한 위기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군사적 억지와 외교적 관리, 경제적 방어를 하나의 패키지로 다뤄야 한다. 한미동맹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되, 한반도 방어 태세가 약화된다는 우려가 생기지 않도록 주한미군 자산 재배치 문제를 투명하고 단호하게 관리해야 한다. 동시에 호르무즈 문제와 관련해서는 에너지 안보, 동맹의 책임, 군사 개입의 위험을 냉정하게 저울질해야 한다. 감정도 구호도 아니라, 국익의 순서와 우선순위가 기준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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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트북LM]



정치권의 책임은 더 무겁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은 어떠한가.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안보와 경제의 복합위기 앞에서도 정쟁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흔들릴수록 정치는 더 무겁고 더 조용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이런 때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제대로 움직이도록 견인하고, 국민 불안을 줄이며, 초당적 대응의 틀을 만드는 일이다. 선거는 선거이고, 국가는 국가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이 선을 구분하지 못하면 정치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금융권과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금융권은 환율·유가·유동성 충격이 겹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선제 대응해야 한다. 기업들은 이미 공급망과 원가, 수출입 리스크를 점검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의 자구노력만으로 버틸 수 있는 국면은 아니다. 산업계, 금융권, 정부가 하나의 테이블에서 움직여야 한다. 국민 역시 마찬가지다. 위기 국면에서는 과장된 공포도, 근거 없는 낙관도 모두 위험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신뢰, 그리고 각 주체가 자기 자리에서 질서를 지키는 시민적 성숙이다.



결국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하나다. 중동의 전쟁이 만든 파고를 대한민국이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안보와 경제를 따로 볼 수 없는 시대다. 북의 미사일과 일본의 재무장, 미국의 전력 이동과 호르무즈 압박, 중국과 러시아의 계산된 중재, 유가와 환율과 주가의 요동은 모두 하나의 위기 속에 연결돼 있다. 이럴 때 국가에 필요한 것은 과장된 영웅담이 아니라 냉정한 관리 능력이다.

북한이 14일 방사포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14일 방사포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 대한민국은 비상한 각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더 정교해야 하고, 정치권은 더 책임 있어야 하며, 금융권과 기업은 더 치밀해야 하고, 국민은 더 침착해야 한다.
위기의 시대에 국가는 구호로 버티지 않는다. 정확한 판단, 신속한 대응, 흔들리지 않는 중심으로 버틴다.
중동의 불길이 한반도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길도 결국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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