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시사평론가]
‘민주주의 위기’라는 말은 이제 그다지 낯선 개념이 아니다.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유럽에서는 선거 때마다 극우 정당들이 곳곳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극우 정당(이탈리아형제당: FdI)이 정권까지 장악했다. 나치 부역자들이 창당한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제1당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2월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는 극우를 표방한 독일대안당(AfD)이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제2당이 됐다. 유럽의 정치지형이 충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이제 더는 말할 것도 없다. 민주주의 모범국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도 극우의 바람이 거세다. 극우 참정당이 약진하고 있으며,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지난달 초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했다. 정치지형이 급속도로 극우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기를 맞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주주의 위기와 극우 세력의 약진은 점점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주로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꼽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 샌델(M.Sandel)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 심화가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이용하고 더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정치적 양극화는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트럼프의 공화당’과 ‘윤석열의 국민의힘’은 사실상 닮은꼴이다. 다만 트럼프는 재집권에 성공한 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은 감옥에 있다는 점이 극명하게 다를 뿐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저력이 나름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치의 실상을 보면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 한마디로 ‘적대적 공생관계’가 견고하게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지역과 이념, 빈부, 세대, 남녀 등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정치적으로 양분돼 있다. 그러니 대화와 타협의 공간이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협치가 실종되고 여야 무한 정쟁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네가 망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적대의 논리가 만연한 배경이다. ‘제로섬 게임’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 싸움에서는 내가 잘하면 좋지만 못하더라도 살아날 수는 있다. 상대가 망하면 내가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 정당에 대한 무차별적 공세와 왜곡, 저주와 음모, 조롱과 폄하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대화가 안 되니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 수단이 지금도 정치권 안팎에서 난무하는 ‘고소·고발’이다.
여야 정당이 틈만 나면 고소·고발에 매달리는 바람에 국회가 민의의 전당인지 아니면 법정인지 국민은 의아하고 난감했다. ‘검찰공화국’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사법부 판결에 따라 정치권 희비가 엇갈리고 승패가 갈리는 바람에 국민주권은 작아졌고 판사들의 힘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정치의 사법화’가 이뤄지자 사법부도 정치적으로 화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사법의 정치화’가 그것이다. ‘사법개혁’이 절박했던 이유라 하겠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권의 중요한 이슈와 정책 등의 결정이 대화와 협상, 표결 같은 정치과정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부의 판결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사법의 정치화는 재판부의 주요 결정이 법리와 양심보다는 정치적 판단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는 그동안 ‘정치의 빈곤’을 질타하는 주요 개념이었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 발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런 배경이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개헌과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이 누누이 언급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부분 말뿐이었다. 여야의 공생관계는 쉬 무너지지 않았으며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 사이 내밀하게 뿌리를 내린 사법의 정치화가 일거에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지난해 5월 1일 대통령선거를 불과 한달여 앞두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결정한 것이다. 재판 절차와 과정도 문제지만 국민의 정치적 선택권을 박탈하고 대법관들이 사실상 대통령을 결정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국민과 정치권이 ‘검찰개혁’에 집중하는 사이, 사법의 정치화가 얼마나 위험한 수준에 이르게 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당장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질타와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조 대법원장은 ‘삼권분립’ 운운하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지난달 말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재판소원제가 도입됐으며 판사가 법을 왜곡해 판결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그동안 격무에 시달리던 대법관들도 대폭 증원될 전망이다. 물론 모든 개혁이 그렇듯이 우려와 반발도 있을 것이다. 일부 위헌 논란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법개혁 요구를 되돌리긴 어렵다. ‘조희대의 대법원’은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법원노조가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라 하겠다.
정치의 사법화도 위험하지만 사법의 정치화는 더 위험하다. 정치는 때마다 국민이 바꿀 수 있지만, 사법부는 철옹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정치 판사’를 퇴출시키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 3일 퇴임한 노태악 대법관의 마지막 당부가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노 대법관은 퇴임식에서 ‘사법권 독립’은 법관의 특권이 아니라 국민 행복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관의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 개혁이라는 직격을 맞고 있는 와중에 쏘아올린 내부의 묵직한 참회록이다. ‘사법부 흔들기’라고 비판하기 전에 사법부 스스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천하의 사법부도 국민주권을 넘어설 수는 없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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