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인물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열정과 헌신의 화신, 천신일—그가 남긴 미완의 과제는

사람의 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 어떤 시대는 권력을, 어떤 시대는 부를, 어떤 시대는 명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인류의 오래된 경전들은 한결같이 다른 기준을 말해왔다. 성경은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한다”고 했고, 불경은 “보시는 집착을 놓는 데서 완성된다”고 했으며, 도덕경은 “공을 이루고도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 것이 도”라고 했다.
 
이 세 문장은 서로 다른 문명에서 나왔지만, 한 사람의 생애를 설명하는 데 있어 놀랍도록 하나로 수렴된다. 1943년 부산에서 태어나 2026년 3월 17일 삶을 마친 천신일의 생애가 바로 그러하다. 그는 많이 받았고, 많이 이루었으며,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내놓았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한 기업인의 퇴장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이 사라진 사건으로 남는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세중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이 붙었다. 1974년 제철화학을 세워 산업 현장에 발을 디딘 뒤, 1982년 창업한 세중을 여행·물류·정보기술을 아우르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과정은 한국 경제사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라는 틀에 가두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2024년 포스텍 명예공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기업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다.” 이 짧은 문장은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열쇠다. 그는 돈을 버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 사람이었다.
 
그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은 포항의 땅 위에 있다. 포스텍 캠퍼스가 자리 잡은 그 터는 누군가의 결단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1985년 그 부지를 기증했고, 이후에도 학교와 사회를 위해 지속적으로 자산을 내놓았다. 그 스스로도 “내가 가장 잘한 일”이라 회고한 그 선택은, 사실상 한 개인이 미래 세대의 시간을 대신 준비해 준 일이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씨앗을 남긴 사람이 아니라 숲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돈이 되는 영역보다, 돈이 되지 않는 영역에 더 깊이 들어갔다. 문화재 환수와 보존이다. 평생 모은 석조 유물 2000여 점을 바탕으로 세중옛돌박물관을 세우고, 이를 우리옛돌문화재단으로 이어가며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되찾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 일은 계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경에서 말하는 보시는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제자리로 돌려놓는 행위’다. 그는 문화재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수집은 축적이 아니라 회복이었고, 그의 박물관은 전시장이 아니라 기억의 귀환지였다.
 
그는 스포츠에서도 조용한 흔적을 남겼다. 대한레슬링협회 회장과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지내며 한국 체육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늘 같았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구조를 만들고, 이름을 남기기보다 토대를 남겼다. 도덕경의 말처럼, 그는 이루고도 드러내지 않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축은 모교 고려대학교다. 교우회 기록은 그가 1977년 교우회관 건립 모금에 참여하고, 1980년 교우회보 육성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으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교우회장으로서 조직을 이끌었다고 전한다. 교우회 100년사 발간, 유럽지부연합회 창립, 4·18 의거 50주년 기념사업 등은 단순한 행사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을 제도화하는 작업이었다.
 
특히 그는 국내를 넘어 해외 교우 네트워크 확장에도 깊이 관여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대선 출정과 2008년 중국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한 중국 교우회 확장과 아시아 교우회 창설 준비는 단순한 동문 활동이 아니라, 인재와 국가, 민간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장기적 설계였다. 그는 대학을 다닌 사람이 아니라, 대학을 평생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에는 인연이 많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고려대 동기로서 6·3 동지의 인연을 맺었고,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도 깊은 교류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인연은 사적 관계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그 인연을 공적 가치로 전환하는 데 능한 사람이었다. 인맥을 쌓는 사람은 많지만, 인연을 구조로 바꾸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그의 별세 소식에 고려대 교우회는 “교우회의 든든한 기둥이자 큰 어른”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어른’이란 나이가 아니라 방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큰 어른’이란 그 방향이 공동체 전체를 향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오늘 우리는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은 넘치고, 정보는 넘치며, 선택지는 끝없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기준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무엇이 옳은 지보다 무엇이 유리한지를 먼저 따지는 시대 속에서, 천신일이라는 이름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
당신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썼는가.
 
성경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고, 불경은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오고 간다”고 했으며, 도덕경은 “남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도”라고 했다. 그의 생애는 이 세 문장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방식은 남았다. 그리고 그 방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기업은 성장해야 하지만, 그 성장은 사회와 연결되어야 한다. 문화는 보존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책임 있는 선택 위에서만 가능하다. 공동체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헌신하는 개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그가 남긴 미완의 과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이어야 할 시작이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있었던 시대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리고 그가 없는 시대는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한 시대의 큰 어른이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질문은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진고려대학교 교우회
[사진=고려대학교 교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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