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의 모시모시] '허풍쟁이' 손정의가 판을 짜는 방식

미일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 만찬장.
 
테이블에는 구글과 IBM, 퀄컴과 웨스턴디지털, 오픈AI와 팔란티어, 블랙록과 모건스탠리, 록히드마틴과 보잉의 CEO(최고경영자)가 앉아 있었다. 기술과 금융, 그리고 권력이 한 곳에 모인 자리다. 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마사”라고 부르는 남자,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만찬 전날, 오하이오에 약 800조 원 규모의 AI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의 거액 투자다.
 
오래전부터 일본에선 손 회장을 ‘大ボラ吹き(큰 허풍을 떠는 사람)’, 또는 ‘大風呂敷(큰 보자기를 펼치는 사람)’이라 불렀다. 손정의는 늘 이 두 단어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투자방식은 단순하다. “먼저 크게 지르고, 과감하게 말한 뒤, 나중에 그 말에 맞춰 현실을 끌어오는” 방식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자기를 크게 펼쳐놓는 순간 그 안으로 자본이 들어오고, 기업이 들어오고, 정부가 들어온다. 그가 만드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판’이다.
 
이번 오하이오 프로젝트의 구조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손정의가 800조 원을 혼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센터의 건물과 전력 인프라는 금융을 통해 조달하고, 서버와 AI 반도체는 글로벌 빅테크가 채운다. 일본의 제조기업과 금융기관, 미국의 에너지 기업과 기술기업, 그리고 정부까지 하나의 틀로 묶인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된다. 하나의 판 위에서 움직인다.
 
손 회장의 투자방식은 정치와 상업을 잇는 政商(정상)이라 불린다. 이 단어는 한국에서는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정경유착이라는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정상’은 권력을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권력과 시장을 연결하는 존재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방향을 읽고, 민간의 자본과 기술을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역할이다. 정치와 산업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사람이 바로 정상이다.
 
손 회장의 ‘큰 허풍’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구조를 여는 신호다. 먼저 큰 그림을 던지고, 그 그림에 맞춰 자본과 기업, 정책을 모은 뒤 현실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늘 논란을 부르지만, 동시에 새로운 구조의 출발점이 된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그렇다.
 
트럼프의 통상 정책, 일본의 대미 투자 전략, 글로벌 AI 인프라 경쟁. 이 세 가지 흐름이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였다. 이것은 기업 투자를 넘어, 사실상 국가 간 산업 협력에 가깝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명의 기업인이 서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장면이 여전히 낯설다. 기업은 투자만 하고, 정치는 정책만 만든다. 같은 방향을 말하면서도 같은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 정경유착이라는 기억이 연결 자체를 경계하게 만든다. 그 결과 리스크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판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쟁의 방식은 이미 바뀌었다. AI, 반도체, 에너지, 데이터센터 이 모든 산업은 개별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다. 전력 인프라와 금융, 외교와 정책이 결합되지 않으면 애초에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이 싸움은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구조의 경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판을 설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정치와 시장 사이를 오가며 리스크를 감수하고 구조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일본은 이 역할을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 왔다.

우리는 아직 그 역할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판을 설계하는 사람이 없는 국가는 결국 남이 만든 판 위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순간, 선택권은 더 이상 우리에게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 겸 사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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