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이정현·김부겸의 도전

  • 정치, 지역을 넘을 수 있나

정치가 지역에 갇히면 국정은 좁아지고, 국정이 좁아지면 국가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한국 정치가 오랜 기간 반복해온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지역주의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험지 출마’ 선언이 단순한 개인의 결단을 넘어 정치의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 이정현 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광주·전남 통합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공식화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 전 위원장은 “다들 포기할 때 나는 광주로 간다”고 밝혔다. 보수 진영의 기반이 취약한 호남에서 정면 돌파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호남을 버리고 어떻게 대한민국을 말하겠느냐”는 그의 발언은 정치적 수사를 넘어 한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를 짚은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반복적으로 배제되는 현실을 방치한 채 ‘전국정당’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50만 이상 도시 경선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50만 이상 도시 경선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전 국무총리 역시 과거 대구에서 정치적 도전을 이어온 인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대구시장에 출마한다. 영남에서 민주당 정치인이, 호남에서 보수 정치인이 도전하는 구도는 상징성이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 정치 이벤트에 그칠지, 구조적 변화를 이끌 계기가 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는 단순한 정서의 문제가 아니다. 공천 구조, 정당 조직, 지역 기반 정치 환경, 유권자 인식이 결합된 하나의 고착된 구조다. 이 구조는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의 ‘우세 지역’으로 만들고, 다른 정당에는 사실상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왔다. 그 결과 경쟁은 약화됐고, 정책의 다양성과 책임 정치 역시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

5일 오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대구 기독교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영하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 후보오른쪽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오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대구 기독교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영하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 후보(오른쪽)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험지 출마 자체는 정치의 기본에 가까운 행위다. 불리한 지역에서도 후보를 내고 경쟁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이다. 정치란 유리한 곳만 선택하는 전략이 아니라, 불리한 조건에서도 설득과 책임을 통해 지지를 확장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전 위원장이 강조한 ‘불리한 곳에서도 책임지는 정치’라는 문제의식은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개인의 결단만으로 지역주의 구조가 바뀌기는 어렵다. 한 번의 선거, 한 번의 출마로 정치 지형이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정당 차원의 장기 전략, 지역 조직 구축, 지속적인 인재 발굴과 정책 경쟁이 병행되어야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험지 출마는 상징적 메시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역주의는 정치권이 강화한 측면이 있지만, 유권자의 선택이 이를 유지해온 측면도 존재한다. 특정 정당에 대한 고정적 지지와 배제가 반복된다면 정치권 역시 변화의 동기를 갖기 어렵다. 정치 변화는 정치인만이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을 통해 함께 만들어진다.



정당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특정 지역을 전략적으로 배제하거나 형식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는 전국정당으로서의 역할과 거리가 있다. 전국정당이라면 전국에서 경쟁하고, 패배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선거 시기에만 후보를 내세우고 이후에는 조직과 정책을 방치하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정치는 결국 신뢰의 축적이다. 지역을 넘겠다는 선언이 의미를 가지려면, 해당 지역의 삶과 현안을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함께하겠다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선거를 위한 접근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일관된 실천이다.



이정현과 김부겸의 도전은 한국 정치가 외면해온 과제를 다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것이 정치 구조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상징을 변화로 연결하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시간과 축적된 행동의 몫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이번 도전이 정치적 장면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정치의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인가. 그 답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이후의 지속성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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