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 한국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정용진의 AI 승부수, 신세계의 새로운 길을 지켜본다

유통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 상품이 아니라 ‘결정’을 파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수많은 상품을 비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맞는 선택”을 원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점점 인공지능(AI)에게 맡기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오픈AI와 손잡고 ‘대화형 커머스’에 나선 것은 바로 이 변화의 본질을 겨냥한 시도다. 늦었지만 방향은 정확하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단순한 추천 기술이 아니다. 소비자가 “가족 식사 준비”라고 입력하면 상품을 고르고, 결제하고, 배송까지 이어지는 ‘완결형 소비 구조’다. 검색과 비교라는 인간의 수고를 AI가 대신하는 구조다. 유통의 인터페이스가 화면에서 ‘대화’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글로벌 유통 기업들은 AI를 통해 고객 경험을 재설계하고 있다. 쇼핑은 점점 ‘행동’이 아니라 ‘대화’가 되고 있다. 신세계의 선택은 그 흐름에 뒤늦게 올라탄 것이지만, 최소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언제나 그 다음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늘 ‘감각 있는 경영자’로 평가받아 왔다. 트렌드를 읽는 능력,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분명 강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경영은 ‘지속성’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시도는 많았지만, 성과로 보여준 것은 많지 않았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미샤 라스킨 리플렉션 AI 대표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미샤 라스킨 리플렉션 AI 대표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온라인 전환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급격히 재편되는 동안 신세계는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쳤다. SSG닷컴은 있었지만 시장을 흔들지는 못했고, 결국 주도권은 쿠팡으로 넘어갔다. 오프라인 혁신 역시 부분적인 성공에 그쳤다. 스타필드는 화제를 만들었지만 산업의 판을 바꾸지는 못했다.
 
 
정용진의 문제는 ‘아이디어 부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이디어는 넘쳤지만,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여 시스템으로 완성하는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의 도전은 늘 뉴스가 됐지만, 결과는 제한적이었다.
 
 
이번 AI 전략은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AI는 다르다. 단순한 사업 하나가 아니라 기업 전체를 바꾸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물류, 조직, 의사결정 구조까지 모두 연결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AI는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전환’의 문제다.
 
 
신세계가 진정으로 성공하려면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첫째, 데이터다. 온오프라인에 흩어진 고객 데이터를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지 못하면 AI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추천은 흉내 낼 수 있지만, 개인화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가장 취약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둘째, 물류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배송이 늦으면 소비자는 떠난다. 이미 시장에는 ‘빠름’이라는 기준이 자리 잡았다. 추천과 배송이 분리된 구조에서는 경쟁이 성립하지 않는다. AI가 추천한 상품이 가장 빠르게 도착해야 한다. 그것이 ‘완결형 커머스’의 전제다.
 
셋째, 조직이다. ‘AI 퍼스트’는 선언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의사결정 방식이 바뀌어야 하고, 현장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AI를 도입하고도 사람이 예전 방식으로 일하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기술이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정용진은 이번에는 끝까지 갈 수 있는가.
그의 과거를 보면 의문이 남는다. 새로운 시도는 많았지만, 중간에 방향이 바뀌거나 동력이 약해진 사례도 적지 않았다. 유통은 속도의 산업이면서 동시에 집요함의 산업이다. 한 번 방향을 잡았으면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이번에는 다를까.
 
신세계-오픈AI 동맹은 단순한 협력이 아니다. 신세계의 생존 전략이다. 이 흐름을 놓치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수도 있다. 유통의 중심이 AI 기반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순간, 기존 오프라인 자산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전환’이어야 한다. 오프라인을 지키면서 AI를 덧붙이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AI를 중심에 두고 오프라인을 재정의해야 한다. 점포, 물류, 데이터, 플랫폼이 하나의 구조로 움직여야 한다.
 
 
기업가정신은 결국 책임이다.
전문경영인은 설명할 수 있지만, 오너는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정용진에게 이번 선택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더 이상 실험의 영역이 아니다. 결과로 평가받는 단계다.
그의 강점은 분명하다. 빠르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꾸준히, 집요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다.
 
AI는 유통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지금은 아직 출발선이다. 성공도 실패도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유통은 ‘대화하는 소비’로 이동하고 있고, 그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용진이 또 하나의 실험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세계를 완전히 바꾸는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결국 답은 실행에서 나온다.
 
 
이번에는 다를까.
시장도, 소비자도, 그리고 경쟁자도
모두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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